지혜문학서(智慧文學書) 이야기(26)

쉽게 서원(誓願)하지 말라

지혜문학서 전도서 첫째 부문(1:1∼6:9) 열째 주제는 ‘쉽게 서원(誓願)하지 말라(4:17-5:6)’는 것이다.

‘성전(聖殿)으로 갈 때 너는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짓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될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나갈 일이다.’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희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걱정이 많으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하느님께 무엇인가 서원(誓願)했거든 지체 말고 지켜라.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서원했거든 지키도록 하여라.’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서원하지 않는 편이 낫다.’
‘스스로 한 말 때문에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의 심부름꾼 앞에 경솔했다고 핑계할 생각을 말라. 하느님께 노여움 살 소리를 해서 일껏 수고하여 얻은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이유가 어디 있는가(전도서 4:17-5:5)?’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전도서 저자 코헬렛은 이 주제를 통해 하느님께 제물(祭物)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과의 약속, 즉 계명(誡命)을 듣고 마음속에 새겨 충실히 지키는 것이 먼저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서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스로 하느님께 약속하고 이를 파기함으로써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서원(誓願)’의 사전적 의미는 ‘신불(神佛)이나 자기 마음속에 맹세하여 소원을 세움. 또는 그 소원’, ‘보다 착하고 훌륭하게 살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하는 행위’, ‘원(願)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맹세하는 일’ 등이다.

서원은 ‘약속’, ‘언약’, ‘서약’, ‘선서’, ‘맹세’ 등과 상통하는 낱말이다. 의미상 차이는 있지만 이들 낱말 모두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자어인 약속(約束)의 약(約)자는 무엇인가를 잇고, 묶는 실 ‘糸(사)’자와 저녁을 뜻하는 ‘夕(석)’자를 합성한 글자로 때를 정하여 약속하는 ‘기약’의 뜻이 내포돼 있다. 또한 속자(束)자는 무엇인가를 ‘묶다’는 뜻이다. ‘제한’, ‘얽어맴’, ‘강제’ 등 ‘속박’과 ‘구속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삶은 수많은 약속의 이행 과정

사람의 일상은 수많은 약속의 이행 과정이랄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혼례다. 부부가 되기에 앞서 쌍방은 혼인서약을 통해 평생 서로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변함없이 사랑하고 부부로서의 신의를 굳게 지킬 것을 주례와 양가 가족, 친지, 하객 앞에서 약속한다.

또한 국가 사회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 ‧ 평등과 자유 ‧ 질서 유지 등을 위해 만들어진 헌법 ‧ 법률 ‧ 법규 ‧ 조례 ‧ 규칙 ‧ 규약 ‧ 미풍양속 ‧ 사회윤리, 종교 신조 ‧ 기업체 사규 ‧ 단체 정관 ‧ 스포츠 룰 ‧ 국제법 ‧ 외교 관례 ‧ 조약 ‧ 대통령 취임선서 ‧ 선출직 및 일반 공직자의 선서 및 공직자 윤리강령 등도 넓은 의미에서 마땅히 준수해야 할 약속을 바탕으로 이뤄진 제도들이다. 이 밖에 각 정당의 정강이나 정책, 대선 및 총선 때 정당 및 후보 공약,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선거 때 후보 공약 등도 유권자, 즉 국민 앞에 내걸은 약속이다.

약속은 갚지 않은 ‘부채’다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고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의 단적인 예가 바로 OECD 국가 중 최상위에 자리한 우리나라 이혼율과 교통법규 위반율이다. 이런 본보기 외에도 우리사회에서 약속이나 서약, 선서 등의 위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전관예우 관행, 국방기밀 해외유출, 국가방위산업 비리, 공직자 부정 비리, 집권욕에 사로잡혀 민생은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의 구태 등등-.

R‧W 서비스는 ‘약속은 갚지 않은 부채(負債), 곧 빚’이라 했다. 또한 공자는 ‘오랜 약속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지킨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했다.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구들이다.

1996년 12월 12일 우리나라가 선진국 관문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지 올해로 만 19년이 됐다. 아직은 GDP(1인당 연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맴도는 상태지만 선진국 반열(GDP 3만 달러)에 오를 날도 머지않았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그동안 우리는 국내외의 숱한 역경을 딛고 세계가 놀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나라의 국격(國格)과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서구 자본주의와 물질 지상주의가 낳은 이기심과 배타심, 잘못된 경쟁의식 등의 산물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돼 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고 정신적, 문화적 위상을 높여야 할 때다. 샘솟는 인정과 사랑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 의식, 사회질서 및 준법의식 등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의 시발점은 바로 나 자신

이용웅 전 연합통신 충청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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