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문학서(智慧文學書) 이야기(21)

지금까지 20회에 걸쳐 구약성경 지혜문학서(욥기‧시편‧잠언집‧전도서‧집회서‧지혜서‧ 아가‧시편)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특히 격언과 경구, 금언의 보고(寶庫)인 잠언집(箴言集)에 대해 탐색해 보았다. 잠언집 등 지혜문학서는 모두 이스라엘 민족의 지혜와 영성(靈性)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개개 인간의 가장 큰 바람은 안녕과 행복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공동체)과 집단, 나라와 나라 간의 소망은 공존(상생)과 평화다. 이스라엘 현자들이 백성을 행복과 평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 솔로몬 시대(BC 960)로부터 바빌론 귀양살이(BC 597-538), BC 400년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 동안 모으고 다듬고 편집해 만든 지혜의 모음이 바로 잠언집이다.

‘하느님을 두려워(경외)하며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하느님)를 깊이 아는 것이 슬기다(잠언 9:10).’ 이 짧은 구절이 잠언의 키 워드다. 잠언의 저자는 이렇듯 지혜의 원천이 하느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하느님의 지혜는 ‘백성의 체험을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부연하면 ‘하느님은 백성의 체험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잠언 1장에서 31장까지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이스라엘 민족이나 그리스도교 인들이 잠언을 ‘생명을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잠언의 이 핵심 메시지는 ‘민심이 곧 천심이요,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우리 속담의 판박이다. 잠언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며 우리 모두를 행복과 평화, 생명의 길로 초대하고 있다.

허무를 통해 지혜를 전하는 전도서(傳道書

이번 회에서부터는 전도서(傳道書)에 대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지혜문학서 6권 중 하나인 전도서는 명칭 그대로 길, 즉 도(道)를 전해주는 글 모음이다. 전도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코헬렛(Qobelet)이라는 서명(書名)으로 나타난다. 코헬렛은 ‘집회(集會)에서 말하는 사람’, 즉 사회자나 설교자를 가리킨다. 그리스어 성경번역자들 역시 ‘집회(集會)’를 뜻하는 에클레시아(Ekklesia)에서 파생된 에클레시아스테스(Ekklesiastes;설교자)를 이 작품의 저자로 택하고 있다. 따라서 코헬렛이든 에클레시아스테스든 고유명사가 아닌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다.

12장으로 이뤄져 있는 전도서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부문( 1:12-6:9)은 설교자(철학자 또는 현자)의 인생에 대한 탐색, 둘째 부문(6:10-12:14)은 설교자의 결론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전도서 첫째 부문에서 설교자는 ‘인생의 탐색’ 과정을 통해 ‘인생은 허무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전도서 둘째 부문에서 설교자는 하느님이 섭리하는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때 인생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님을 천명한다. 이것이 전도서 둘째 부문의 메시지다.

행복은 현재를 올바르게 사는 데 있다

‘행복은 현재를 올바르게 사는 데 있다’는 것이 전도서의 핵심 메시지다. 이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도서가 나오게 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도서 안에는 비관주의(염세주의)와 쾌락주의, 회의주의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지혜문학서를 깊이 살펴보면 BC 3세기경 팔레스티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당시 상황과 조건에 관한 분명하고도 현실적인 판단이 그 안에 녹아 있다.

이 시기에 팔레스티나는 프톨로메우스가 지배하는 그리스 제국의 식민지로서, 백성 대부분이 교역과 경제와 정치를 주무르던 토비아다스 가문의 무거운 징세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저자는 백성에게 더 나은 미래, 즉 희망이 없어 보이던 그때(BC 250년) 이 책을 썼다. 앞이 보이지 않던 그런 세계 속에서 저자는 앞날에 대한 희망을 열렬히 희구하면서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만들려고 한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저자는 재력‧권력‧지식‧쾌락‧사회신분 등을 중시하는 당시의 사회체제는 환멸을 안겨줄 뿐 결코 이상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인다. 그런 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전도서 1:3)’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서 저자는 실망 대신 두 가지 커다란 비전을 발견한다. 하나는 하느님이 역사와 우주의 절대적인 주인임을 발견하고 하느님 존재라는 실재를 하느님께 돌려드린다. 또 하나는 하느님이 늘 현존하며 순간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인간에게 구체적인 생명을 선물로 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온전한 실현이 현재의 순간을 생명을 주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로 알아 진지하게 살아가는 데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진지하게 사는 현재의 순간이 영원을 체험하게 해주고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갈증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백성에게 현재가 없는 불의한 사회 구조 고발

저자는 그러나 현세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 노동의 열매를 누릴 필요가 있음(2:10, 2:24, 3:13, 3:22, 5:19-20, 9:9)을 천명한다. 이는 ‘백성이 하늘 아래서 땀 흘려 노동한 결과를 누릴 수 없을 때,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전도서는 불의한 사회 구조의 결과를 매우 아프게 고발한다. 땀 흘려 거둔 열매를 누리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현재가 없다는 것이다. 백성이 그렇게 된 것은 이런 저런 개인에게서 빼앗겨서라기보다 그들이 매여 있는 불의한 사회체제, 몇몇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고 백성 모두를 약탈하는 그런 사회체제에 착취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그런 사회적 범죄가 신학적 범죄임을 보여준다. 즉 하느님은 만민이 생명을 누리고 살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백성이 그 삶을 빼앗기고 있다면, 그 약탈과 착취가 생명의 샘인 하느님 자신의 권리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도서가 고발하는 이런 불의한 사회 구조는 오늘에도 여전하다. 이는 이런 잘못된 구조를 타파해야할 힘 있는 자들이 눈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금력과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정의 실현에 눈을 감고

이용웅 전 연합통신 충청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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