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끝내는 풍화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

흙의 신비...1988년 12월, 서예를 곁들인 <남계 조종국 도서전(陶書展) >을 열면서 그때 느낀 소감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흙처럼 신비롭고 영원한 존재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품이나 아무리 웅장한 구조물도 결국 오래고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 풍화하여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폼페이 시의 최후 같은 것을 생각해도 그 영화와 번성이 결국 흙속에 묻히고만 게 사실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어떻고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어떻다 해도 언젠가는 결국 흙에 반환되고 말 것은 뻔한 운명이다.

…그러나 흙은 되돌려 받기만 하는 무지한 존재가 아니라 그 속에서 뭔가를 되돌려 주는 매력 또한 대단하다. 예를 들어 흙속에서 풀과 나무, 곡식 등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움트고 자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석유나 석탄 온천수나 금, 은, 보화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흙은 가져가기만 하는 무법자가 아니라 되돌려줌을 아는 위대한 시혜자(施惠者)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흙의 영원성을 어느 화가는 자신의 서과(도료)에 흙가루(紛沙) 같은 것을 섞어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단 몇 백 년만이라도 더 오래 남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예술품도 수 천 년, 수 만년은 가지 못할 것이 뻔 한 노릇이다. 하물며 필자가 쓰고 있는 붓글씨나 그밖에 수많은 공간예술품이 유한한 존재임을 생각할 때, 이는 한편 섭섭하면서도 한편 다행한 일이 아닌가한다.

왜냐하면 이 지구상에 그 수많은 예술품이나 구조물이 영원히 흙에 귀의하지 못하고 그냥 멍청히 남아 있기만 한다면, 도무지 우리의 오랜 후손들은 그 너절한 점유물들 때문에 얼마나 번거롭고 답답해 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따라서 적당히 남아있을 것은 남아있고, 그 뒤로 적당히 사라질 것은 사라진다는 이 생멸(生滅)의 섭리가 사실은 너무 고마운 노릇이 아니겠는가.

모처럼 흙의 신비를 생각하면서 천 년 만년 살아남을 줄 아는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새삼스럽게 연민의 정을

조종국 원로서예가, 전 대전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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