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추위가 아직은 겨울인데 비가 내린다. 모두들 봄을 재촉하는 비라고 한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해마다 이맘때면 동방규(당나라 시인)의 이 싯귀(소군원:昭君怨)가 새롭다. 하지만 겨울도 이제 봄기운 앞에 남은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다 하니 겨울이 간 것도, 봄이 온 것도 아닌 어중간한 계절이다.

올해로 3.1절 96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3.1절에는 ‘나라 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이 한창 벌어졌다. 전국이 태극 물결을 이뤘다. 이를 두고 한 편에서는 ‘나라 사랑 운동이다’, 다른 편에서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하며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마저 애국심을 가늠하는 정치적 잣대로 이용돼온 결과가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 독립군들이 염원을 쓴 태극기, 독립기념관 소장

외세에 의해서건, 우리 민족의 잘못된 탓이건 남과 북이 서로 갈라져 있다는 자체가 부끄러움이다.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과거의 고통 속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어머니요 누나들(위안부)이 엄존한다는 현실도 부끄럽다. 그동안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남(일본) 탓만 하며 이들을 외면해온 우리들의 무관심이 너무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남북통일 문제는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 숙원 과업이다. 당장 해결에는 어려움이 많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현재 진행이요 미래 진행형의 과업이다.

허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는 사정이 다르다.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때문이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할머니는 238명-. 이 중 현 생존자는 53명뿐 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건 전쟁 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과,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 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이다. 이런 요구에 앞서 이들의 한결 같은 바람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사죄만이라도 받고 싶다는 것이다. 올 1월에만 두 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한(恨)을 품은 채…. 생존 할머니 대부분이 8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이다.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해방 후 그리운 고향에 돌아와서도 ‘위안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분노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버려진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경제 성장’이 최우선 과제였던 과거 정부 역시 수십 년 동안 이들의 아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 1월 이후 매주 수요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이른 바 ‘수요 시위’가 열리고서부터다. 올 들어 지난 2월 25일까지 23년 동안 1,167번째 집회가 있었지만 ‘가해자’인 일본 정부는 사죄는커녕 분명한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최근 ‘역사 뒤바꾸기’에 혈안이 돼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초 위안부 내용을 상세히 기술한 미국의 멕그로힐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에 대해 “일본군이 최대 20만 명에 달하는 14~20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모집, 징용했다는 내용이 (미국 교과서에) 담겨 있어 깜짝 놀랐다”며 “정정해야할 것을 국제 사회가 바로 잡지 않아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동남아를 비롯한 온 세계의 비난이 아베 총리에게 쏟아졌지만 아베 정부는 ‘너희는 짖어라,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겠다’는 식이다. 후안무치에, 안하무인격 외교적 결례의 표본이다.

아베 정부의 이런 주장은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로 600만 명의 유태인을 집단 학살(홀로코스트)한 히틀러 독재 만행을 단죄하며 부끄러운 자신들의 역사를 사죄한 역대 독일 정부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26일 베를린 기념식에서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렇게 연설했다. “독일인은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였고 공모자였으며 학살을 못 본척한 자들은 은밀한 동조자였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다. 아우슈비츠는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로 이는 오늘 같은 기념일뿐만 아니라 항상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라고-.

작금 한일 관계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일 관계 경색은 과거사 문제(위안부)와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 등이 핵심인데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나라를 지키지 못해 일제에 강점되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보다 큰 관심과 배려에 신경을 써야한다. 또 위안부 등 왜곡된 역사와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계략을 바로잡기 위해 주도면밀하고 적극적인 대응 논리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한일 민간단체와 학계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역사 바로 잡기 운동 전개, 나아가 일제 피해 당사국인 북한 ‧ 중국 ‧ 동남아 국가, 미국 ‧ 독일 ‧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의 연대 강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외교력을

이용웅 전 연합통신 충청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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