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권력의 완장’ 벗기는데 언론이 감초냐?”[정상희 세상보기] 곰삭은 김영란 법 아큐 · 종술이도 웃는다

루신의 아큐 정전은 중국근대사의 비극을 아큐라는 무식쟁이 건달을 통해 그려낸 20세기 초 중국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아큐는 빈촌 조 씨 집에 얹혀살면서 허드렛일을 해주며 동구 밖 사당에서 기거한다. 아큐는 지나가는 여승이나 병약한 거지들을 보면 행패를 부려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 하지만 마을 지주 관원들에게는 늘 두들겨 맞는다. 맞으면서도 ‘군자는 말로하지 손을 쓰지 않는 거야’라고 앙알거린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혁명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떤다. 아큐는 ‘개 같은 놈의 세상, 뒤집어엎어라. 나도 혁명당원 아닌가.’라고 작심한 후 관원과 지주들을 괴롭힌다. 아큐가 미쳐 날 뛰던 날 밤 혁명군은 조 씨 집 재산을 아큐와 상관없이 털어간다. 아큐는 조 씨 집을 턴 범인으로 지목돼 체포된 뒤 총살당한다. 그를 체포한 어떤 사람이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주며 그에게 서명하라고 한다. 아큐는 글을 못 쓴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러면 너 좋은 대로 동그라미 하나 그려라’고 했다. 아큐는 붓을 잡은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아큐는 엎드려 평생의 힘을 다 쏟아 간신히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나 붓이 솟구쳐 수박씨 모양이 됐다. 아큐는 고민하지 않았다. 사람이 태어나면 감옥에 갈 때도 있고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동그라미가 수박씨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 일생일대의 오점이라고 탄식한다.

루신은 중국 사람들의 지지리 못난 정신 승리 법을 까발린다. 자기를 감싸고 있는 위기 불안 실패 등을 뻔히 예감하면서도 이겨 헤쳐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정신내면으로 달아나 자기 합리화를 한다. 정신 내면에서 위안과 만족을 얻을지언정 현실은 외면한다. 루저가 되어 거들먹거리며 같은 꼴의 루저들을 괴롭힌다. 무엇 때문에 서명하는지 그 내용은 알아보지 않고 동그랗고 예쁘게 서명하는 것, 그것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중국 근대사는 갈 갈이 찢어진 것 아닌가.

완장을 차고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양어장 허가가 난 저수지 둑에 나서면 보이는 게 없다. 종술이는 꿈에 그리던 그런 저수지 관리인을 따 냈다. 조용한 산골 마을에 완장 차고 설치는 실세는 종술이 밖에 없다.

80년대까지 여류문단의 어른 박완서가 쓴 ‘완장’이란 소설은 발표되던 때부터 이 정당 저 정당 기웃거리던 철딱서니 없는 정치인들을 패러디화한 내용이어서 부패정치에 찌든 지식인들이 즐겨 읽었다. 학력도 변변하지 못한 종술이는 제대했으나 할 일이 없었다.

투전판의 윗목에서 요강 비워오고 담배 심부름이나 하며 빌빌거리던 종술이가 양어장이 되어 유료낚시터가 된 저수지 관리인 완장을 차게 되다니···. 주변 건달들은 종술이를 부러워했다. 하다 보니 종술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생기고 어떤 낚시꾼은 종술이에게 촌지도 찔러준다. 외상술마저 거절하던 선술집에서 여자 끼고 술타령도 한다. 종술이는 완장을 끼고 잔다. 이 쏠쏠한 실리를 남이 알까 무서웠다. 재미도 있었다.

김영란 법이 태동할 때 사회의 중추세력들은 ‘과연 국회를 통과 할 수 있을까? 어렵사리 통과 해 봐야 공직자들에게 불리한 조항은 빼거나 고쳐, 원안이 크게 훼손되거나 괴물로 변할 걸···.이라고 예상했다. 3일 오전 나는 이글을 쓰고 있다. 조간이나 포털에는 김영란 법이 3일 중 국회에서 처리된다고 예측기사를 내놓고 있다. 여야 간의 법안을 둘러싼 협상도 매우 우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야가 손발이 척척 맞는다. 자기들이 법의 대상자들이어서 말 안 해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고친다.

4년 전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매우 엄격했다. 그러나 협상을 통해 본인과 배우자의 직계혈족, 형제자매 등에서 배우자로 축소했다. 공직자인 국공립학교 직원들을 조사범위에 넣었기 때문에 사립학교 교원도 대상범위에 넣었고 KBS 직원이 대상범위에 들어가니 일반 언론인도 대상자로 포함시켜 대상 인원만도 2천만 명이 넘는 거대한 법률이 될 것 같다. 남의 돈 받아먹지 말자는 공직자들의 대오각성은 박수를 받아도 좋다. 그러나 공직자 아닌 사립학교 직원과 언론인들은 큰 집 잔치에 죽는 작은 집 돼지 꼴이 된다.

국회의원들은 법에 의해 소추되어 혼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신문 방송 등 언론에 오르내려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은 가라앉으면서 손에 걸리는 것은 사람이고 지푸라기고 껴안고 놓지 않는다. 물귀신은 혼자 빠져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언론에 비판당하면 비판한 기자를 붙잡아 껴안고 같이 죽으려고 한다. 마지막 협상 때도 그들에게는 맛있는 안주감이 되어 언론사를 대상에 집어넣고야 만다.

언론인들은 국회의원과 다르다. 사실 이 시대의 여론 형성은 언론인과 대학교수가 좌지우지하면서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한다. 기자들은 국회의원이 거느리고 있는 9명의 고급 보좌관도 없고 KTX무료승차도 못하고 자가용 기름 값도 제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기자는 당국에서 홍보대책비의 눈곱만 한 일부분을 받을 때도 있었으나 국회의원처럼 차떼기 돈은 받아 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는 불쌍한 백면서생이다.

공직자 부패 막는다고 교묘한 돌려차기로 언론인들의 입에 자 갈을 물리려는 이 하찮은 발상은 도대체 어데서 나온 거지같은 발상인가. 대전출신 국회법사위 이상민 위원장은 며칠 전 ‘ 이 법의 대상자에 사립학교 직원 언론인을 포함 시키는 것은 헌법에 배치 될 위험이 있다’면서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는 입법 취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의원이다. 좌고우면하는 의원들 중에서 군계일학처럼 앞서가는 의원으로 보였다. 그의 의견을 그가 끝까지 관철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종술이는 권력의 달콤새콤한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불법낚시를 단속하는 권리도 권력이니까 한번 맛 들이면 남 주기 싫은 법, 권력이 소유욕으로 변하고 소유욕은 온갖 부정과 연결돼 있다.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여의도 정가를 누비는 오늘의 종술이들 입법 활동을 돈과 연계시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종술이들, 법과 권력에서는 내침을 당하지만 불쌍한 서민들을 벗기는 루신의 아큐, 어쩌면 오늘의 이 나라 국회의원과 그렇게 닮았을까. 요즘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사자성어는 파란만장(波瀾萬丈)이 아닌,

   
 
즉 파란 만 원 권  만장, 일억 원을 지향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상희 전 동아일보 제 2사회부장

 

목요언론인클럽  webmaster@mokyoclub.com

목요언론인클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