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이 대자연(大自然) 속에서 울타리를 치고 대문(大門)을 높이 세우고는 그 기둥에다 왜소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문패로 다는 생활을 누려온 지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기 이를 데 없는 창조주(創造主)의 깊은 뜻에는 아랑곳없이 땅 위에다 멋대로 울타리를 쳐 놓고 대문을 세워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한 인간들은 지금에 와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다시 바다와 하늘에까지 경계선을 치고 자기의 소유욕을 채우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자연 파괴에 이골이 난 人間들은 더럽고 탁한 것을 모르는 우주 공간가지도 이처럼 탁하게 오염시켜 이제 얼마 안가서 끔찍한 재앙을 불러들일지 모른다고 뜻있는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울타리를 높이 치고 대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인간의 속된 문화’는 이제 자신의 보호본능(保護本能)의 수동적(受動的) 차원에서 벗어나 어느덧 극히 이기주의화(利己主義化)된 공격적인 문화의 길로 줄달음질치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혼탁(混濁)한 이기주의(利己主義) 문화 속에서는 대범하면서도 이타 주의적(利他主義的)인 가치(價値)나 문화는 크게 뒷전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눈 곱 만큼의 양보도 모르는 극히 비타협적(非妥協的)이고 공격적이기까지 한 문화가 앞으로 판을 치게 된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인(先人)들이 이상(理想)으로 여겨온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선비 정신은 이제 영원히 없어질는지도 모른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이 있다. 이는 곧 ‘큰 길에는 문(門)이 없다’는 말이니 당초 하늘과 바다처럼 큰 길에 어찌 감히 문을 세울 엄두도 내기나 했겠는가? 이처럼 큰 도리(道理)란 울타리를 친 문 안에 갇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큰 진리(眞理)란 어떤 특정한 학파나 특정한 인물이 제정한 교조(敎條)에 매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곧 잘 특정한 인물의 교조(敎條)를 절대시함으로써 진리라는 보배를 바라볼 자유로운 시각을 차단해 버리기 쉽다. 인간이 설정해 놓은 계율에 속박되어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할 값진 것을 놓치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작은 것에 집착하여 정작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우리에게 흔히 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우리의 속담도 이러한 사실을 일러서 한 말인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太陽)처럼 광명정대(光明正大)하여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열려 있지 결코 문이라는 좁은 공간만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펼치는 대도(大道)도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객(政客)들이 농단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에서 초연한 사람이야말로 참 정치의 큰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대사는 비록 법의(法衣)를 걸친 승려이었으나 소절(小節)에 매이지 않고 대국(大局)을 보고 행동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신라의 서울 경주 시가지를 노래를 부르고 지나갔다. 「그 누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랴? 하늘 받칠 기둥을 깎으련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효 대사의 이 노래를 듣고도 도무지 그 뜻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임금 태종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대사께서 귀부인을 만나 귀한 자식을 두고 싶다는 것이로구나!」하고 사람을 보내어 대사를 궁궐로 불러 오게 하였다. 궁궐에 들어오는 도중 원효 대사는 물에 빠져 옷이 함빡 젖었다. 태종은 이를 보고 과부로 있는 요석공주의 거처(居處)로 보내어 옷을 갈아입게 하였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원효 대사는 요석공주의 몸에서 신라의 큰 학자 설 총을 낳았다.

 

그가 요석공주를 가까이 한 것은 애정을 탐한 결과는 결코 아니고 다만 설 총과 같은 훌륭한 인물을 세상에 끼치고자 한 데 그 동기가 있어 결코 그의 행적을 두고 불가(佛家)의 파계(破戒)로 논죄하지 않는다.

 

원효 대사와 같은 큰 인물의 경우는 모든 것이 허락되고 있다. 그는 이른바 계율 따위에 매이지 않은, 그러나 결코 세속적이지 않은, 자재(自在)하는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 그것은 이 같은 위인에게 통하는 구절인 것이다.

 

조종국 (원로서예가 · 전 대전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