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가성(淸白家聲)

 

조선조의 어린이용 교과서 「소학(小學)」을 보면 자손 된 자 모름지기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님에게 큰 기쁨을 안겨드리는 것이 최상의 효도라고 적혀 있다.

 

자고로 사람에게 있어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대한 집념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굳이 소학(小學)을 예로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 역사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이 이 황 활한 꿈을 좇기 위하여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다했었던가? 요즈음 유행되는 ‘출세 한다’, ‘감투 쓴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끝없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 왔음도 확실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의 처지에 걸맞지 않는 과분한 욕망 즉 과분한 감투를 씀으로써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비참한 경우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주면 귀찮고 안주면 섭섭하기 짝이 없는 이 감투에 대한 욕망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 서식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 끝없는 욕망으로 인간은 스스로 크게 현달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멸망으로 몰리기도 할 것이다.

 

이 감투라는 용어는 옛날 벼슬아치들이 쓰던 모자에서 연루되어 벼슬자리의 대유법(代喩法)으로 사용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가령 학식과 덕망이 고루 갖추어진 어느 선비가 그 신분에 걸맞은 감투를 썼다고 가정할 때 그에게서 풍기는 내외 인품과 능숙한 판단력과 행정력이 조화를 이루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을 것임은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만약 그와 반대로 자기의 신분과 처지에 걸맞지 않은 큰 감투를 썼을 때 그의 정수리에 딱 맞아야 할 감투가 밑으로 축 쳐져서 귀와 눈을 가리고 코끝에 걸릴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그 모습이 볼 쌍 사나운 꼴불견으로 보이겠는가? 그런데 그 꼴불견의 모습이 그 자신으로 그치면 간단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이미 눈과 귀가 가려져 그 기능이 마비되었으니 상대적으로 코와 입의 기능이 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눈은 가려져 있으니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보지 못할 것이며, 귀가 가려져 있으니 또한 백성의 원성마저 들을 수 없는 대신 냄새를 맡는 코의 기능과 맛을 감별하는 입의 기능이 크게 발달할 것이니 이 쯤 되면 사회적인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우리가 역사상 청백리(淸白吏)라고 일컬으며 존경하는 관리는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정사에 참여한 사람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관리가 이러한 청백리(淸白吏) 정신으로 사회를 정의롭게 이끌어 나갈 때 사회의 번영은 물론 그 집안의 성가(聲價) 또한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마련인 것이다. 청백가성(淸白家聲)이란 바로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그럴진대 소학(小學)에서 일컫는 입신양명(立身揚名) 또한 이 같은 고고한 선비정신의 소유자에게만 영광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탐관오리(貪官汚吏) 까지도 가성(家聲)의 반열(班列)에 끼워주자는 것은 아니다.

 

조종국(원로서예가 · 전 대전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