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해 설날 아침이다. 온 민족이 가족친지들과 함께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올 한해도 좋은 일 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훈훈한 덕담과 세배를 나누는 대 민족 명절이다. 하지만 개인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이런 아름다운 문화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화평(和平)....화목하고 평화스럽다.(栗谷先生曰 凡一家之人 務相雍睦 其心和平 則家內慶事必集)무릇 한 집안사람들이 서로 화목 하는데 힘써 그 마음이 화평하면 집안에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들이 반드시 집결된다.

민족명절을 맞아 우리가 지켜가고 있는 <설>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면서 조상의 훌륭한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모든 동물은 어미로부터 태어나는 즉시 걷고 일생을 본능으로 살아가는데, 사람은 20년이나 되는 긴 세월동안 고생해서 배워야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타고난 천품(天稟) 외에 그 노력에 비례해서 거의 무한대의 능력을 개발할 가능성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천품(天稟)을 아무리 출중하여 타고났다. 하더라도 애써 개발하지 않으면 범재(凡才)이하로 떨어지고 잘못된 데다 힘을 쏟으면 동물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그것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산고수려(山高水麗)한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그 자연 경(自然景)도 이를 데 없이 좋거니와 거기서 솟아나는 물은 어디서든 움켜 마실 수 있었고 과일이며 인삼, 토종닭, 개, 돼지, 소 등 모든 것이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다.
그러던 게 금세기 후반에 국토는 물론 바다까지 오염이 돼 물도 물고기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되지 않았는가.

우리 강토에서 자연 상태로 나는 모든 게 훌륭한 것처럼 사람 또한 어느 나라에서보다 훌륭한 바탕을 타고난 것이 사실이다. 동성동본(同性同本) 혼인 금지로 피가 맑고 생김새가 얼마나 반듯한가.

그러던 것이 교육을 받고 살아가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대개는 좋은 자질보다 자기 욕심만 부풀어 어떻게든 눈가림으로 남을 속이고 자기 이득만 취하려드니 신의와 성실로 가정과 나라를 지켜오던 우리 선인들에게 참으로 면목이 없다.

우리 조상들이 어느 시대에 지금처럼 연일 사회의 가치질서가 문어지고 공직자의 각종 비리와 부정사건, 성폭행사건. 묻지 마 살인사건 등이 저질러졌단 말인가. 들에 소를 매어두고 곡식을 베어 널리 말려도 물명유주(物名有主)로 남의 것엔 손 하나 까딱대지 않았던 그 순후(醇厚)한 풍습이 언제 그렇게 깡그리 사라지고 남의 집안 금고 속은 물론 바다 속 어패류까지 다 걷어 갔단 말인가.

언제 아무 물품에나 유명 상표를 붙여 주부들의 눈길을 현혹시키고 본업을 뒷전으로 미루고 땅 투기로 국민경제를 어지럽혔던가. 또한 세계 제1위 교통사고 국이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고려 이전은 차치(且置)하고 가까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조선조(朝鮮朝)는 고대 망했어야 할 것인데 5백 19년이나 지탱된 것은 목에 칼이 들어가고 약사발이 안겨져도 옳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한 발짝도 안 물러서는 선비정신 때문이었다.

그렇거늘 지금은 그런 선비정신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나라의 경제가 기우뚱하고 정치 불안정에다 사회 가치질서는 무너져 한치 앞을 애다 볼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는 시험을 골라잡기로 해, 글 한줄 못 쓰는 사람을 내보내고 더구나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한자(漢字)공부를 그 적기(適期)인 초등학교 때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학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동양(東洋)의 한자문화권에서의 적응능력은 홀로 뒤처져 가고 있지 아니한가.

이 것이 다 성실성 없이 쉽게 살아가려는 풍조의 소산(所産)인바 이러다가 국제적 고아가 될 게 분명하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조종국 (원로 서예가 ‧ 대전광역시의정회장)

목요언론인클럽  webmaster@mokyo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