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일 두 나라 감정이 어느 때보다도 나쁘다.

한, 일간의 민족감정을 배제하고 지난 과거사를 논하기란 매우 지난한 일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안목으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해도 알게 모르게 민족감정이 작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통사학을 하는 사람들도 손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의 해석을 하는 학자는 드물다. 오히려 국수주의적 해석을 금기 시 하는 눈치다. 심지어는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내 것이니, 네 것이니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로 치부되기가 일수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불상문제가 또 불거졌다.

그러다 보니 역사학의 초심자인 나 같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슬아슬한 대목이 눈에 자주 띄고 이러다가는 이른바 글로벌리제이션(globalyzation) 이라는 세계적 사조가 과연 우리에게 공정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게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의 광륭사에 있는 일본 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이 한국의 것이면 어떻고 일본의 것이면 어떠냐 하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다만 그것이 인류공동의 자산이자 예술로 보면 그만이라는 식의 사조다. 동대사(東大寺)의 대불(大佛)이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사실 보다는 그것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구사하는 도래인(渡來人)이라는 궁색한 말도 결국은 원주민들이 아니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어(造語)에 불과하다.

그런가하면 중국의 경우는 어떤가. 중국은 그런 사조에 대해 오히려 무신경하다고나 할까. 세계문명의 한 기둥이 자신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자긍심이 대단한 것이다. 제삼자인 우리들로서도 굳이 그와 같은 주장을 부인하고 싶지도, 부인할 수도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고구려도 자기나라 역사라는 식의 소위 동북공정 같은 것은 말고.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과 역사박물관에서 유물을 설명하는 큐레이터들은 그들이 중국인이거나 교포거나 막론하고 진열된 유물의 우수성에 대해 자긍심에 넘쳐있다.

몇 년 전 대만 역사박물관에서 유물설명을 해 준 교포 성기인(成耆仁) 부교수는 외국인(한국인)으로서 다섯 번이나 역사박물관에서 일하기 위해 시험을 쳤다가 겨우 합격되어 지금은 박물관 연구원으로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중국역사문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중국인에게 조차 감명을 주어 지금은 일류 큐레이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成씨에 따르면 “한국의 국정교과서에 당삼채(唐三彩)를 [당나라 때 세 가지 채색을 사용한 도기] 라고 표현해 놓았다” 는 사실을 들어 한국의 중국역사 이해 수준에 일침을 가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지 아니 충격을 받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중국 사람들은 수자가 많으면 석 삼(三) 자를 쓴다”는 설명이다. 그것을 모르고 한국의 교과서가 세 가지 색을 써서 만든 도기라고 설명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 새삼 느꼈다. 성(成)교수는 한국의 교과서가 그렇게 기술해 놓았다는 말을 듣고 한국에 갔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그것부터 찾아보았다고 한다. 역시 그랬었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 것을 굳이 말하는 이유는 한국의 역사교과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역사유물의 우수성을 말하려는데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았으나 동양사의 세 기둥인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를 바라보는 눈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국적이 어디냐에 따라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중국인은 한 점의 의심의 여지없이 자국역사에 대한 자긍심에 넘쳐 있고, 또 하나의 기둥인 일본의 경우는 그들 나름대로 중국의 아류를 인정하면서도 중국과 한국 특히 중국의 역사문화를 자기들 나름으로 각색하여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을 십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향을 받았다는 중국과 한국 중 한국에 대하여는 되도록 그 영향력을 덜 받은 쪽으로 인식하려 애 쓰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인다. 오히려 아득한 고대로부터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억지 주장을 교과서에 까지 올려놓고 일본 국민의 역사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상기 두 나라에 비해 확실하게 정립된 역사 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감이 있다. 물론 고대사에 관한 한 일본의 억지 주장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여 왜곡부분을 명쾌하게 파헤치는 교수들도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일본에 있는 역사문화재가 “누구 것이 문제가 아니다” 라며 자칫 국수주의에 몰릴까 봐 몸조심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린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우리 같은 초심자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되는 “누구의 것이 문제가 아니다”와 “일본 부처는 수와 양은 우리보다 절대적으로 많으나 그 만든 솜씨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조악하다” 는 등의 주장에 대하여 당황하고 헷갈리는 것이다.

어떤 고고학교수는 일본의 경우 1년에 1만 건 이상의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우리는 겨우 2백여 건에 불과하다면서 양국의 고대사연구 열기를 비교하고 있다.

그는 동양 3국의 학자들이 초청되는 역사학술대회에서 중국인들이 일본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례를 자주 보인다고도 말했다. 일본사람들은 중국 사람의 입을 빌려 자기들 주장을 하고 있다고 까지 서슴치않았다.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 주장되는 역사적 연구 사례 등이 그 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겠다. 부분적으로 그와 같은 주장이 일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 자료가 우리 측에 의해 나오기 전까지는 억지 주장이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초심자들은 또 한 번 헷갈리는 것이다.

버선 끝이 살짝 하늘로 상향 곡선을 긋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적 미이며 멋이라고 말하는 어떤 미술인은 일본 불상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또 어떤 한국인 큐레이터는 아무리 신상을 크게 해 놓아도 얼굴 인상만 험악하게 만들어 놓았을 뿐 팔뚝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손가락에도 살아서 생동하는 힘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초심자들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보이고 또 달리 말하면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안목이 낮은 것을 우선 탓해야 되겠지만 무식한 탓으로, 아직까지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은 민족감정을 배제하고 동양 삼국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까 ?

김세영 전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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