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삶>

정치인 손학규 씨가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내걸었던 캐치푸레이즈 이다. 경선에선 실패하였으나 한 때는 이 같은 정치 구현의 꿈을 가지고 대권에 도전 하였던 손학규 씨. 이 구호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국민행복시대>실현의 정치 구상과 궁극적으로는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理想)에 치우친 막연한 구호 같기는 하지만---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최근에 전남 강진(康津) 다산(茶山)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흙담집에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손학규의 귀거래사”라는 제목으로 짧막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중국 진(晋)나라 때 도연명(陶淵明)이 마흔 한살 때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며 세속의 속박으로부터 풀려 나, 심신의 자유를 얻은 심경으로 읊은 시가 “귀거래사”이다. 전원(田園)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 하며 즐겁게 살아간다는 시인의 정신이 깃 들여 있다.

지난달 7.30 보궐선거에서 낙선하고 곧바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뒤 이어 강진으로 내려가서 은거(隱居)에 들어갔다. 손학규 씨는 21년간의 정치인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부인과 함께 이 곳 흙담집으로 내려와서 산 속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칩거 중이라고 한다.

꼭 필요한 생활도구와 간단한 먹거리만 가지고 산 속에 들어와 둥지를 튼 손학규 씨. 세속의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산속의 자유를 택한 손학규 씨 부부는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스님들이 한때 살다 비어둔 거처(居處)는 15평쯤 되는 토담집 이라고 하는데 머지않아 겨울이 닥쳐오면 난방은 되는 건지 공연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곳을 찾았던 손학규 씨의 한 지인은“얼굴이 편안하고 밝아 보였다. 낙선 하고 상심하여 건강을 염려 하였더니 건강한 모습을 보니 안심되었다”고 전한다.

마음을 비우고 대자연과 벗하여 살다 보면 마음이 편하고 생기(生氣)를 얻게 되어서 심신이 더욱 건강해 진다고 한다. 산속에 사는 자유인. 인간 손학규 씨를 한번 찾아가 만나보고 싶다. 산속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고 박목월 시인님의 시심(詩心)처럼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 속에 자연과 더불어 자유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야 간에 참된 정치 원로를 찾아보기 힘든 마당에 손 고문의 정계은퇴는 매우 아쉬운 여운을 남기기도 한 게 사실이었다. 참되고 경륜 있는 손학규 후보를 낙선시킨 유권자들의 판단이 여야를 떠나서 안타까운 일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영국 신사로 알려진 손 고문이다. 

여야의 불신과 대립, 갈등이 심화 되는 정치의 난맥상을 볼 때에, 용서와 화해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된 이 마당에 손 고문 같은 온건한 원로 정객을 한 번 더 당선 시켜 나라위해 유용하게 써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다.

대권 같은 것 떠나서, 당파나 계파 같은 것 떠나서 국회에 들어가서 백의종군 하면서도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손 고문은 자기를 저버린 유권자들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은퇴. 스스로 유배(流配)아닌 유배 길을 택한 것 아닌가.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고 “지금이 가야할 때”라고 여의도를 떠난 손 고문.
 

이형기 시인님의 시 “낙화”가 생각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후략)

손 고문은 지금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나서 저 참다운 목민관, 백성을 위한 봉사정신을 강조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 와서 다산이 걸었던 옛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자기 성찰의 시간도 가질 것 이다.

손 고문은 정계은퇴 선언에서 ‘정치를 떠나더라도 시민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많은 방법이 있다.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어딘가에 나를 묶지 않겠다.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잠도 잘 잘 수 있다’고 밝혔다. 강진에 가서도“마음은 물처럼 고요하다”고 말했다는 그.
 

손 고문은 2008년 민주당 대표 임기를 마친 뒤 강원도 춘천의 한 농가에서 닭을 치며 2년 동안 칩거하다가 정계에 복귀 했었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번은 그때와 다르다는 것. 본인이 직접 정계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참다운 목민(牧民) 위민(爲民) 봉사의 선구자요 실학(實學)의 선각자 이었던 다산 정약용선생의 18년간 유배 생활지였던 강진에서, 그의 정치 신념이었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다산정신을 기리며, 더욱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윤 충 원 (시인. 전 중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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