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9시경 서둘러 한 구청의 장애인 종합복지관으로 목욕을 갔다. 서두른 것은 목욕 후 만날 약속이 있고 탕이 넓지 않고 오전에만 더운 물 같은 물이 나오고 오후가 되면 더운 물이 달리기 때문이다. 탈의실에서 탕에 들어서보니 빈자리가 없어 아는 사람 뒷자리에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 그 사람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자리를 내어 주고 나갔다.

온탕 턱 앞 천정 쪽에는 온탕에는 몸부터 우선 씻고 머리를 감은 뒤에 들어가라고 알리는 현판이 걸려있다. 칫솔질과 면도를 한 다음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갈 참이었다. 샤워를 하는데 등이 썰렁했다. 이 때 온탕 쪽에서 귀에 익은 큰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고 들어와야지 문을 닫지 않고 들어오면 어떡해! 문을 닫고 들어오라고 문을!” 자리에 앉으려던 사람이 되돌아가 문을 닫았다. 다시 이어진 큰 목소리. “공동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생각 좀 해야지!” 문을 닫고 앉았던 사람이 큰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 본 모양이다. 다시 큰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이런 소리하긴 참 힘 든다!”고.

지난 겨울 목욕탕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였다. 자리를 잡으면 더운 물을 틀어놓고 일어날 줄 모르며 늘어졌다. 이런 때다. 교장 선생님은 또 큰 목소리, “더운 물 좀 아껴서 쓰라!”고. “기다리는 다른 사람도 생각해 더운 물을 무작정 틀어놓고 내 집 것 아니라고 함부로 쓰지 말아야지!”

오늘 아침에도 교장선생님은 또 큰 소리. “아니 머리를 감지도 않고 온탕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 머리를 먼저 감고 들어오라! 고 했거늘!”

얼마 전에는 탕 안에 모인 욕객들이 내 집 사랑방처럼 와글와글 시끌 시끌. 교장 선생님은 이 날도 “여기가 내 집 사랑방이냐?”며 “좀 조용히 목욕들이나 열심히 하고 가라!”고.

하루는 욕객이 팬츠 양말 손수건 등 몇 가지 빨래 거리를 가져와 빨았다. 이 걸 보고 그냥 넘어 갈 교장 선생님이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다. “여기가 빨래터냐?”며 또 큰 소리.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휴게실에 앉아 TV시청을 하거나 이런 저런 담소를 즐긴다. 욕탕에서 교장 선생님의 큰 소리를 들었던 사람과 그 광경을 보았던 사람들은 교장 선생님에 대한 평이 엇갈렸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그와 같은 교장선생님-어르신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뜻을 모았다.

TV를 시청하던 한쪽에서 정치에 관한 뉴스가 나오자 저마다 누구 못잖은 평을 해대며 갑론을박을 해댔다. 이런 모습을 보고 그냥 넘어갈 교장선생님인가? 또 큰 목소리. “다른 사람 좀 생각하며 조용히 보면 안 돼?! 아이 시끄러워!”

이 70대의 교장 선생님은 하얗게 센 머리에 대추씨 같이 단단하게 생기셨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의 웃음은 아무 티가 없어 사람들의 호감을 한데 모으는 괴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이와 같은 목욕탕 교장 선생님 필요한 곳이 목욕탕뿐이겠는가?

박천규(본 클럽 고문 / 전 대전MBC 상무)
 

박천규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