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토리 지평 넓혀, 마치 성악의 조수미 같아

대전이 낳은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최나경(재스민 최 37)이 이번에는 현란한 화음을 고향 팬들에게 선사했다. 지난 12월6일 연정국악원에서 열린 대전방문의해 기념연주회에서 최는 현악기·목관악기와의 중주(重奏)에서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플루트 영롱한 매력에 빠지다!’란 타이틀에 어울렸다.

최나경 연주

그동안 최는 대전에서 대부분 독주악기로서의 레퍼토리만 선보였을 뿐 중주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필자 역시 베이스 피아노와의 재즈트리오는 접했지만 클래시컬한 3중주, 4중주는 보지 못해 이번연주가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독주에 뛰어난 그가 다른 악기와는 어떻게 조화를 이뤄낼지 궁금했던 차였다.

이날 그녀는 목관악기, 현악기와의 화음을 능란하게 과시했다. 다양한 음색과 황금처럼 빛나는 음색, 현란한 기교를 유감없이 보여줘 플루트의 여신(女神)다웠다. 많이 맞춰보지 못했음이 분명한데도 현악기, 관악기 군과 뛰어난 하모니를 연출했다. 이는 그녀가 미국의 5대교향악단인 신시나티심포니와 명문 빈심포니에서 수석으로 닦은 저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이날 협연한 바이올린 김필균, 비올라 김민정, 첼로 이송희, 더블베이스 박종호, 오보에 홍수은, 클라리넷 이진아 등 대전시향의 수석주자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요즘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박세환까지 합세했다.

이날 5곡 중 첫 곡인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라장조 작품 285와 드메르스망의 플루트 오보에 피아노를 위한 듀오 브릴란트 ‘윌리엄 텔’, 그리고 웹스터의 플루트, 클라리넸과 피아노를 위한 카르멘 랩소디에 가장 관심이 컸다. 3곡 모두 유명해 팬들의 관심이 컸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 4중주는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등 현악기군이 플루트를 완벽하게 받쳐주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기에는 넉넉했다. 연주를 듣는 것 자체만도 좋았다. 워낙 아름다운 곡이기 때문일 터다. 필자 역시 무척 밝은 이 곡을 자주 듣는 편이어서 즐거웠다.

3번째 곡 윌리엄 텔은 홍수은의 오보에, 박세환의 피아노와 함께 뛰어난 하모니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대전시향 수석 홍수은과는 호흡이 잘 맞아 플루트·오보에 두 악기의 대조적인 음색을 유감없이 들려주었다. 특히 윌리엄 텔 3번째 부분 ‘정숙’은 두 악기가 주고받는 평화로운 목가풍의 연주를 잘 표현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윌리엄 텔은 요즘 잘 연주되지 않고 서곡만 자주 연주된다. 당시 로시니를 싫어했던 베를리오즈조차 이 윌리엄 텔 서곡은 극찬했을 정도로 뛰어나다. 필자 역시 고교시절 음악시간에 처음 듣고부터 좋아한다. 그런데 총 4부로 되어있는 서곡의 목가적인 3부의 ‘정숙’에 나오는 주요부분은 플루트와 오보에가 아닌 잉글리시 혼이다. 그러나 오보에를 쓰기도 한다.

사실 어려운 악기인 잉글리시 혼은 오케스트라에서 잘 쓰지 않는 편으로 그 대신 음색이 비슷한 오보에로 대체한다. 음색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의 2악장도 마찬가지이다. 클라리넷, 피아노와 함께 한 웹스터의 카르멘 라프소디도 뛰어난 화음을 들려줬다. 앙코르 곡은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비롯한 미국 민요가 여럿 나오는 ‘아메리칸 듀엣’을 연주했다.

현재 6년 째 대전광역시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최는 몇 해 전 영국의 저명한 클래식잡지 신피니뮤직에서 선정한 ‘음악역사 이래 최고의 플루티스트 10’(All time best flutist)에 뽑혔다. 플루트의 전설 마르셀 모이즈와 장 피에르 랑팔, 제임스 골웨이, 엠마뉴엘 파위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해 위명을 떨쳤다.

최는 플루트 레퍼토리의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사실 플루트의 레퍼토리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악기 곡을 편곡하여 많이 연주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더욱이 크로스오버까지 넓히자니 힘들다.

그러나 최는 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그의 공은 크다. 곡 선택의 폭이 넓은 건 그의 최대 장점이다. 마치 성악의 조수미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재스민 최의 연주를 보고 듣는 건 즐거운 일이다.

권오덕 전 대전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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