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의 가을은 유별나다. 도심 속에서 계절과 역사를 함께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찾은 지 올해로써 71년.

실제적으로 근세 백여 년을 그들의 그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기가 죽어있던 민족.

나는 시골에 살면서 어쩌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을 기회가 생기면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특히 돌담길 한 모퉁이에 정동교회 앞을 지나가면서 이곳을 왕래하던 또 지금도 왕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정동교회는 1897년 한국의 개신교 교회로는 최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1890년대라고 하면 1945년 해방되기 58년 전에 세운 건물이다.

당시 사회적분위기는 일제 식민지배의 고통과 신문화의 개화 물결이 한데 물결치던 혼돈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요즘 덕수궁 돌담길엔 가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흐드러진 낙엽은 발길에 채이고 연인들은 팔을 끼고 걷는다.

그런가하면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에서는 덕수궁돌담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연인들이 등장한다.

같은 가수의 옛사랑이라는 노래에는 광화문 네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운운하는 가사도 등장한다.

1890년대 덕수궁돌담길을 걷던 당시의 사람들과는 판이한 분위기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한다.

덕수궁 돌담길은 조선말기의 아관파천, 고종황제의 비극등 가시밭길도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세영 전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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