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사일로 미국에 와 있습니다. 조지아주 달로네가란 곳인데 아틀란타에서 북쪽으로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모처럼 어렵게 온 여행이라 무엇이던 `얻어가야겠다`란 생각으로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부슬비가 왔습니다. 달로네가는 아팔라치안 산맥에 둘러싸인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울창한 숲이 사람을 압도하고있습니다. 대학캠퍼스가 있는 이곳도 숲속이나 다름없습니다. 숙소 주변에도 수십년 묵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여기저기 늦가을 단풍을 달고 초겨울을 맞고 있군요.

나무는 사람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목나무가 많으면 사람들끼리 서로 믿고 신뢰가 쌓이는 느낌입니다. 나무가 그렇게 자랄 때까지 사람과 나무 사이에는 무언의 평화공존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나무가 많지만 이렇게 많은 나무가 사방 수백 킬로미터를 가도 끝이 없게 펼쳐져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유화를 취미삼아 그리고 있는 나는 풍경화에서 빠질 수 없는 나무를 자주 그리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시골마을의 둥구나무는 참 일품입니다. 동네 입구에 서 있는 둥구나무는 잘 생긴 외모뿐 아니라 비록 식물일지라도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요. 철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수세를 자랑하는 둥구나무의 아름다움은 동네전설의 대부분에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고목의 바다 - 그것입니다.

고목들은 하도 많고 덩치도 커서 나무마다 무슨 전설을 갖고 있기에는 희소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가도 가도 수해(樹海) 바로 그것입니다.

요즘에 그 고목들이 일제히 잎을 털어내고 있습니다. 달로네가 작은 마을에 추수감사절이 왔습니다. 바로 전날 그곳엘 가 보니 사람들이 감사절 행사장 마당에 낙엽을 쓸고 있데요. 그 많은 양의 낙엽들을 치울수 없어 기계로 바람을 불어 낙엽들을 밀어내고 있데요. 진풍경입디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납니다.

사람들이야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고목들은 열심히 낙엽을 훌훌 털어내고 있는 겁니다. 자연의 이치가 사람에게도 바로 적용된다면 사람도 언젠가는 무언가 훌훌 털어버리는 지헤가 필요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그렇습니다. 가끔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 앙금 같은 것 - 저들처럼 훌훌 털어버린다면 이듬해 상큼한 새잎들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사람들아 ! 나 처럼 털어버려 봐! - 일단 한번해보라니깐 !`

김세영 전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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