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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충혼탑에서 영렬탑으로
현충원 생기면서 존재 시들
[시대의 표정] ④ 사라진 대전 랜드마크 영렬탑

 

   

영렬탑 제막식(1957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충남도청 뒤 언덕에 세워져, 대전역에서 중앙로를 거쳐 도청까지 시원한 일직선의 경관을 만들어내는 한 축을 당당한 영렬탑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착공되었다.

당초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1945년 갑작스러운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광복으로 실제론 거의 사용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끝난 뒤인 1953년 전몰한 대전충남 출신의 국군과 경찰의 위패를 모시는 보훈시설로 쓰기로 확정하면서 마무리 공사를 통해 최종 완공되었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기부금 1,000만환이 모아졌고, 그 돈으로 기존의 충혼탑 최상단 정면에 태극기와 유엔기 모양의 석판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탑신부에는 당초에 불렸던 충혼탑(忠魂塔) 대신, 새로 ‘영렬탑(英烈塔)이라는 글자를 새긴 세 개의 현판 글씨가 추가되었고 탑의 좌우에 총을 든 군인과 경찰 동상이 각각 설치되었다.

이후 영렬탑은 3.1절, 현충일, 6,25전쟁 발발일, 광복절 등 국가 기념일의 추모식이 거행되는 공식 행사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신임 도지사나 시장의 취임에 앞서 참배를 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대전에 국가원수가 방문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배하는 대전의 핵심적인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 하지만 1985년 대전 유성에 국립현충원이 조성되면서 점차 공식행사장으로의 위상이 약화되었다. 그후 2008년 대전 보문산에 보훈공원이 만들어져 그곳으로 위패들을 이안되자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러나 수십 년 간 국가와 지자체의 공식적인 보훈시설로 활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렬탑은 일제의 잔재 등으로 취급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12년 그 일대에 대전 중구청의 공원조성사업 계획이 수립되자 조용히 철거

   
 

되었다.

고윤수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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