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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희미한 목척교…’
'피난민 만남의 장소’되기도
[시대의 표정]③ 1950년대 목척교

 

   
1950년대 목척교(충남역사문화연구원)

일제때 대전교, 나무자(尺) 닮아 목척교 이름 얻어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민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찾기 위해 매일 같이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면, 대전의 피난민들은 목척교를 만남을 기약하는 장소로 택했다.

또한 1962년에 나온 안다성(安多星)의 「대전의 못 잊을 밤」이라는 노래에도 “가로등 희미한 목척교에 기대서……”라는 가사가 나올 만큼, 목척교는 오랫동안 대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련히 떠오르는 풍경이자 상징이었다.

목척교가 처음 가설된 것은 1912년으로 총공사비는 4천 6백 원이었다.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를 오가던 새우젓 장수가 세워놓은 지게가 마치 자(尺)의 눈금 같아서 해서 목척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혹은 다리의 모양이 ‘나무자(木尺)’를 닮아 목척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제시대 제작된 지도들을 보면, 목척교는 ‘대전교(大田橋)’로 표시되기도 하는데, 주로 공식적인 문서에는 목척교 대신 대전교라는 이름이 쓰였던 것 같다. 1924년 길이 72.72m, 폭 7.88m로 개수되어 되었고,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이전해 온 뒤, 각종 도시기반 시설들이 확장되자 목척교 역시 1935년 다시 대대적인 보수와 확장 공사를 거쳤다.

당시 공사내역을 보면 길이는 1.72m 정도 늘어난 정도였으나 폭은 크게 확장되어 19.68m가 되었다.

오랜 세월 대전의 동과 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목척교는 1973년 복개공사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으나, 2009년 대전 천 복원사업의 하나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철거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립되었다.

 

   
 

고윤수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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