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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벽’을 넘는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김세영 칼럼]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5주년을 맞으며

“단재공원 조성, 생가를 복원, 기념관 개관 의의 크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애를 되돌아보면 요즘 날씨처럼 차갑고 험한 일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언론인, 역사연구가,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은 비록 가시밭길이었으나 일생은 오로지 나라사랑과 민족의 계몽이었습니다.

12월 8일은 그 분의 출생 135주년 되는 날,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한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적 환경입니다. 일본은 갑자기 우경화되었고 또 다시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는 구실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재의 시대적 조명은 날이 갈수록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의 5천년 역사는 이웃 일본과의 역사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불가분의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고장에서 배출된 이순신, 윤봉길, 유관순, 김좌진 장군 등 수많은 선열들이 모두 일본과의 관계에서 희생된 분들입니다.

   
▲ 단재선생 생가지

그렇다면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시대적 숙제를 넘어서 역사적 과제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상대이며 동시에 영원한 경계의 대상입니다. 조선조는 그와 같은 일본에 조선통신사를 12회나 파견하면서 온갖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은 경계의 대상이면서 또한 근린의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까다로운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의 국보 제1호는 백제의 반가사유상입니다. 유명한 일본의 아스카 문화는 백제문화의 이식에 다름 아닙니다. 심지어 일본천황가의 혈통에 백제의 혈통이 섞였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컬하다 하겠습니다.

일본인들은 우리민족의 일본 진출을 도래인이라 부릅니다.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이겠지요. 사실상 일본의 오늘은 도래인들이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단재는 민족의 여명기에 횃불을 들고 우리들이 갈 길을 비춰주신 어른이었습니다. 고대사를 새롭게 조명하여 민족의 기원을 밝히고 여명기의 언론에 불을 붙여 민족의 자각을 강조하면서 한발 늦게 시작한 개명에 앞장서신 분이었습니다.

옛생돌(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은 이분의 생가 터를 확인해 보기 위해 1988년 이곳을 첫 방문 단재선생의 외가 집 권용민 어른으로부터 단재의 생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마늘밭이었던 이곳에 우리는 표지 석을 세우고 그분의 불굴의 민족정신을 기리게 될 날을 기약했습니다.

옛생돌의 회지 백제산책 제3호에는 당시 권용민 씨의 증언에 기초한 생가 터의 도면이 기재되어있으며 당시 충남도문화재위원들의 고증을 받아 오늘의 생가가 복원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옛생돌은 오늘 개관한 단재기념관에 당시 발간된 회지 제3권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생신축하 화환을 증정하는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1991년 대전시가 그분을 기념하는 단재공원을 조성하고 생가를 복원하며 오늘은 그의 기념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을 넘자’, 이것이 저희들이 외치고 싶은 구호입니다. 하지만 구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일본을 바로 보자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70년대 중반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충남대교수이셨던 성주탁교수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고 성 교수님을 찾아온 일단의 일본인들과 함께 공주부여의 고적순례를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사카 상공회의소 시민강좌 수강생이 그들이었습니다. 일본사 강좌를 받고 있던 그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안 성(백제 식 축성법으로 지은 성)이 실제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안 성을 찾는 모임을 만들고 3년여 만에 찾아냈다고 합니다. 일본유력지 아사히신문은 고안 성을 찾는 모임과 함께 공동발굴조사를 펼치고 고안성의 원류인 공산성과 부소산성을 보러 온 것이었습니다.

소위 이 고장에 주재하고 있다는 저는 솔직히 그들보다도 훨씬 문외한이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그 후에 알았지만 일본에는 아스카를 지키는 모인 회원이 5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6,70년대 경제개발시대에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역사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고도보호법을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는 등 수준 높은 활동을 지금도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몇 수 위를 바라보고 미래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도래 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우리는 본래 그들보다 몇 수 위를 걷던 선진문화민족이 아니었던가요?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린다면 그들이 다시 우러러보는 도래 인이 될 것입니다. 우선 통일이 돼야겠지요. 통일이 되면 그동안 웅크리고 있던 민족의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글로벌 리더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김세영<옛생돌 회원, 전 조선일보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평생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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