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독자나 관객 등에게 감동을 주는 건 반전(反轉)의 묘미가 있어서다. 반전에 묘미가 있는 것은 작품 속에 내재된 가치와 메시지가 독자나 관객의 감성을 움직여 대리만족 등과 같은 간접효과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반전은 예측 불허의 상황 전개를 통해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때로는 불안과 초조감, 때로는 긴장과 긴박감, 때로는 기쁨과 행복감, 때로는 슬픔과 불행감, 때로는 안타까움과 아쉬운 감 등에 빠져들게 한다.
명작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오래도록 독자나 관객 등으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바로 이 반전의 여운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작품의 성공 여부는 반전에 있다고들 한다.
계모와 이복동생(팥쥐)에게 숱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감사(監司)와 결혼해 행복하게 해로한다는 내용의 ‘콩쥐팥쥐’ 이야기, 계모의 학대로 죽은 장화와 홍련의 원혼이 마침내 부사(府使) 정동우(鄭東祐)를 만나 원수를 갚게 된다는 ‘장화홍련’ 이야기 등은 고난을 행복으로 반전시킨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우리 고전이다.
반면 착한 나무꾼이 사슴과의 약속을 깨고 아내인 선녀의 간청에 못 이겨 결국 날개옷을 입어보게 함으로써 선녀와 두 자식을 하늘로 보내게 되는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선녀에겐 불행이 행복으로, 나무꾼에겐 행복이 불행으로 바뀐 반전 사례다.
반전(反戰)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7년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가 이 내전을 무대로 쓴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나, 왕실의 제약과 정해진 일정에 싫증이 나 로마 여행 중 대사관을 몰래 빠져 나온 앤 공주가 우연히 특종에 목말라 하는 미국 기자와 만나 해프닝을 벌이는 영화 ‘로마의 휴일’ 등은 이루지 못 할 애틋한 사랑이 작품의 주제여서 관객에게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오래도록 추억케 하는 또 하나의 이색적인 반전 사례다.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1943년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이 작품(‘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을 영화화함으로써 전 세계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영화 속의 남녀 주인공은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쿠퍼는 미국의 젊은 대학 교수 로버트 조던 역을, 버그만은 시장인 아버지가 파시스트에 의해 살해되고 지신도 강간을 당한 뒤 반(反)프랑코파의 게릴라 부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마리아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수 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 영화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중의 영화로 계속 앵콜 로드되고 있는 명화다.
‘로마의 휴일’ 역시 1955년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흑백 영화로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오드리 헵번(앤 공주 역)과 그레고리 팩(조 브래들리 역)이 주연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희극 에로물의 명작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백미(白眉)는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조던은 3일 안으로 적군의 중요 교량을 폭파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험한 산 중에 거점을 둔 (反)프랑코파의 게릴라 부대를 찾는다. 조던은 이곳에서 만난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때가 돼 조던은 마리아와 게릴라 대원 등과 함께 교량 폭파 작전에 나서게 되고 마침내 성공을 거둔다. 조던은 그러나 적탄에 맞아 쓰러진다. 부상이 심해 움직일 수 없게 된 조던은 같이 남겠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마리아를 떠나도록 설득한다. 마리아를 억지로 말에 오르게 해 떠나보내는 조던은 홀로 남아 기관총을 잡고 마리아와 동료들을 무사히 탈출시킨다. 말을 타고 멀어져가는 마리아를 향해 ‘내 사랑 마리아, 마리아’를 외치는 조던의 울부짖음, 눈물을 뿌리며 ‘조던, 조던’을 애절하게 부르짖는 마리아의 울부짖음이 말발굽 소리와 함께 계곡에 울려퍼진다.
‘로마의 휴일’ 역시 마지막 장면이 반전의 정점이다. 미국신문 로마 주재 기자 조 브래들리는 삼엄한 경계를 뚫고 대사관을 몰래 빠져나와 정신없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지쳐 길 한 켠에 잠들어 있는 앤 공주를 발견한다. 세상물정에 어둔 앤이 공주인지를 전혀 모르는 조는 가출 처녀쯤으로 여기고 그녀를 자신의 하숙집에 데려다 하룻밤 재워준다. 다음날 신문사에 출근한 조는 공주의 실종으로 로마 시내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과, 자기 집에 재운 그녀가 바로 앤 공주임을 알게 된다. 특종에 목마른 조는 카메라맨을 시켜 천진난만한 말괄량이 공주의 이색적인 해프닝을 카메라에 담게 하는 등 취재에 열을 올린다. 조와 앤은 그 사이 애정이 싹 튼다. 하지만 조는 끝내 공주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로마에서의 휴가 기간이 끝난 공주는 귀국 기자 회견장에 나타난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조를 발견한다. 공주는 결국 조가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조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간직한 공주-. 앤 공주를 만나 숱한 스캔들에 휘말린 조-. 이 둘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한다. 공주와의 악수 차례를 맞은 조는 자신에게는 특종이 될, 그러나 공주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사진을 선물한다. 조는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게 된 공주를 위해 일생일대 단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특종을 포기한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쓸쓸히 걸어나가는 신사 기자 조, 조가 사라질 때까지 애절하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앤 공주의 눈가에는 눈망울이 맺힌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독자나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이렇듯 ‘반전’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반전의 묘미’를 반전의 미학(美學)‘으로까지 예찬하기도 한다.
반전(反轉)의 사전적 의미는 ‘일의 형세가 반대로 되어감’을 뜻한다. 하지만 반전의 의미 속엔 ‘변화’와 ‘희망’이 전제돼 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억압과 억울함, 불안과 초조, 병고와 심적 고통, 긴장과 긴박, 슬픔과 불행, 안타까움과 아쉬움 등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이 평화와 안녕, 안정과 여유, 치유와 기쁨, 만족과 행복으로 바뀌기를, 아니,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인간 삶의 무대는 바로 이 세상이다. 잘났든 못났든 개개인 모두 나름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때로는 소외돼 외롭고 때로는 괴롭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고...-. 매일매일 이런 일상을 겪어야 하는 것이 주인공들인 우리의 일상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이 있다.
미해결의 세월호 참사, 변사체로 발견된 구원파 교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비극적 종말, 12명의 사상자를 낸 전방부대 한 사병의 수류탄 투척 및 총기 난사 사건, 동료 사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잔악무도한 상급자들의 집단 폭행 사건, 7․30 국회의원 보권선거 여파 등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건 사고와 불미스런 상황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 비록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다 해도 이 세상 주인공인 우리에겐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은가? 결코 좌절하지 말자! 우리 각자 있는 자리에서, 또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자. 나와 이웃의 감동을 위해!
이용웅(전 연합뉴스 충청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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