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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비타의 백일몽

가슴이 답답하다. 미륵보살처럼 보이고 맺고 끊음이 틀림없고 단단하게 보이던 그가 아녀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녀자라 하면 여자와 아이를 뜻하며 철이 덜 난 여자, 약한 여자를 비웃거나 걱정할 때 쓴다. 한 때 70% 가깝게 치솟던 그의 지지도는 40%까지 곤두박질치고 30% 전후였던 잘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이미 50%에 이르렀다는 갤럽 조사가 발표됐다. 산업화 시대를 일궈 낸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을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은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져 가히 종교적이기 까지 하다.

그런데 그 철석같은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피상적으로 볼 때 잘 못했다고 꼭 집어 말 할 만 한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부패하지도, 국정을 농단하지도, 4대 강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다 못 해 웃음거리 가십 한 줄도 없는 모범적인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주변은 훈훈한 사람의 온기와 휴머니즘 냄새가 사라지고 있다.

정말 박 대통령이 아녀자인가?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신뢰에 화답하고 있는가? 처음 총리,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할 대는 운이 없거나, 야당이 너무 극성스러워서 그럴 것이라고 무심하게 보았다. 요즘 사태를 꼼꼼하게 따져보니 그런 것만도 아닌, 청와대의 일부 인사들의 섣부른 행태가 일을 자초한 경우가 많다. 낙마할 것이 뻔 한 사람을 미련스러울 정도로 밀어붙인 것도 문제다. 청문회에 내보낼 사람이 KBS의 아귀 안 맞는 폭로와 야당, 시민단체의 공격에 머리 숙이고 사퇴하게 만든 결과는 박 대통령 신뢰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다.

소혜왕후 한 씨는 성종 6년(1475)에 여자의 수신서라 할 수 있는 내훈(內訓)이란 책을 썼다. 한 나라의 정치가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내조의 공에 좌우되는 일이 많은데 여자들은 덕행의 높음을 얻지 못해 한탄스러워 성인의 도리를 훈화삼아 책을 썼다고 한다. 왕후는 이 책에서 남자들은 호연지기를 알아 스스로 시비를 잘 구별하여 자기 몸을 지탱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한갓 길쌈의 굵고 가는 것만 알 뿐 , 덕행을 알지 못해 한스럽게 여겨오다가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소혜왕후는 여자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귀하게 되면 이는 곧 원숭이에게 관을 씌우는 것과 같으며,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격이 된다고 비유했다. 박 대통령의 내밀한 속내는 모시는 비서실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누가 말하기를 “그가 인사를 하는 걸 보면 달달 봉사 점괘 통을 흔들어 괘를 뽑아내 듯 성의 없고 허술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 주변에서 말 발이 제법 센 사람들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 귀 하게 쓰였던 사람, 육사, 서울 대를 졸업했거나, 판검사를 지낸 변호사들 만 보인다는 것이다.

기자회견도 거의 없다. 기자회견 흉내는 내 보았지만 일방적인 정견발표에 가깝고 후리토킹 식의 일문일답도 본 적이 없다. 회견을 통해 언중유골의 뜻도 알아내고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후덕한 덕담도 해보는 그런 기자회견을 보고 싶은 것이다. 질의응답을 통해 평상 시 볼 수 없었던 민낯을 보고, 여자의 원초적 부끄러움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기자회견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실수하면 좀 어떤가? 그런 실수에서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더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조선 조 중종 13년 왕은 비어 있는 우의정을 임명하기 위해 품의서를 올리도록 했다. 영의정 정굉필, 좌의 정 신용개는 합의하여 김전, 남곤 이계맹 안당 등 4명을 추천한다. 3명을 추천하는 관례를 깨고 왕이 내밀하게 안당을 지목하자 그를 제 4후보로 추천한 것이다. 왕은 안당을 지명했다. 그 날이 5월 15일이었다. 저녁 무렵 큰 지진이 일어나 세 차례나 장안을 뒤흔들었다. 왕은 남곤과 마주앉아 ‘이 지진은 나의 인사 잘못으로 일어난 것 같다’며 장탄식을 했다.

왕이 인사 잘 못을 후회하며 이야기 할 때도 또 땅이 출렁이는 지진이 일어나 궁궐이 크게 흔들리고 용상이 마치 사람이 손으로 밀고 당기는 것처럼 흔들렸다. 홍문관 저작 이충건은 “재주와 행실이 쓸 만 한 사람을 뽑는 일에 대해 조정에는 이미 원칙이 정해져 있으며 왕도 허락한 바 있다. 중간에 시행을 미루거나 엉뚱한 사람을 추천하여 인사기강을 무너뜨렸다. 하늘과 땅이 격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큰 제사를 올려 달래야한다고 읍소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지배 계급에게는 사실 여야도 없고 이데올로기도 없다. 낮에는 사람들의 눈도 있고 하니 서로 앙숙인 체 하면서 티격태격 하지만 밤이 되면 어깨동무하고 폭탄주 마시며 희희낙락이다. 정권? 한 번 쥐면 놓치는 것이 병가지상사 아닌가? 누가 쥐면 어떠한가. 관리는 관리대로,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대로 여의도에 빌붙어 대대손손 끼리끼리 해먹는다.

끼리끼리 돌아가며 해먹는 인사를 회전문 인사라고 회자되고 있다. 이런 끼리끼리 인사는 동종교배(同種交配0라는 치명적 비극을 맞게된다. 근친결혼이 지속되면 불구자를 낳을 확률이 높아지듯, 동종교배가 지속되면 열등분자를 낳게 되고 종(種) 스스로의 퇴화를 거쳐 단종으로 끝나게 된다. 학연과 혈연, 보수, 진보 간 이어져 오는 추한 전쟁은 끝낼 생각도 없이 계속돼 오고 있으며 끝없이 확전되고 있다. 동종교배의 적폐다.

사람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자신이 이 사회의 볼트, 너트가 되어 생동감 잃은 기계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못 느낀다. 그러니 따뜻한 격려나 위로의 말도 별로 듣지 못하며 산다. 그래도 30여 년 전에는 사는 정이 있었다. 손자의 아픈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며 ‘할머니 손은 약 손…’ 하면서 자장가를 불러주던 할머니, 봉숭아 꽃 잎으로 즙을 내어 손톱에 칠해주시던 어머니의 추억이 생생하다. 사람들이 국가에 기대하는 것은 ‘큰 것 한방’이 아니라 할머니의 약 손 같은 따뜻한 휴머니즘이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성녀요, 노동자들의 어머니다. 그녀가 ‘후안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자 국가 예산의 절반을 복지사업에 퍼 붓는다. 그녀의 이름은 ’에바 페론‘, 손 벌리는 사람 사람에게는 조건 없이 나눠줬고, 노조가 원하는 것도 무엇이던지 승낙했다. 가난한 빈민과 창녀들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노동자의 수호신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국고는 텅텅 비고 말았다. 50년 간 두 번이나 국가 부도를 맞이했고 요즘 세 번째 부도가 선포됐다. ’에비타‘는 포퓰리즘의 원조다. 그녀의 인기 정책과 혜 푼 씀씀이가 나라를 주저앉힌 것이다. 사람들이 박 대통령이 ’에비타‘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1300년의 길고 긴 역사를 지닌 로마제국의 국정 아젠다는 매우 간단하고 구체적이며 알기 쉬었다. 고대사회나 지금이나 아젠다의 설정과 집행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로마 황제는 ‣식량 확보 ‣안전보장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세 가지의 국정 아젠다를 내걸고 모든 행정을 집중했다. 그 정책은 효율적으로 집행되었고 법은 준엄하게 처리돼 천년왕국의 영광을 누린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녀자를 벗어나 아버지 박 대통령보다 더 빛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망상을 버려야 산다. 역사의 정합성(整合性)을 보면 나라는 큰 바퀴, 작은 바퀴가 정확하게 맞물려야 톱니바퀴의 역량이 극대화 된다. 즉 급하다고 혼자 돌아가면 나머지는 겉돌게 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드레스덴 성명으로 대북정책의 기본을 단단하게 다졌고, 노인기초연금제도를 시행해 복지정책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백화점 식으로 늘어놓고 화려하게 자랑하는 식의 정책은 버려야 한다. 정보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따른 무서운 변화에 대해 관료사회의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 정보화 시대의 리더십은 매사 간단하고 홀가분해야 한다. 정부가 다 이끌어 가려하면 경제와 사회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된다. 대통령은 권한 일부를 각료에게, 각료는 실 국장에게 권한 위임을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1초가 아깝다며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고 했다. 지금은 정부가 각종 규제를 혁명적으로 철폐하여 작열하는 경기활성화의 불꽃을 지펴야 한다.

사람들이 이 말은 꼭 하고 싶다면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는 말이 있다. 좌익척결이다. 요즘 지식인 사회에서는 언필칭 ‘융합의 시대’라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른다. 새는 좌우의 양 날개를 움직여야 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익만 고집하지 말고 좌익과도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지식인의 모습이며, 촌놈소리도 안 듣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배반의 흐름에서 벗어나 나라의 역사 교육을 살려내라는 것이 말없는 다수의 절규가 아닐까.

야당은 이제 그들의 오랜 관성 때문에 정부여당•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트집 잡아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할 것이 뻔하다. 당 자체가 정상에서 비정상화로 변해 비대위체제로 가는 판에 여당에 협조해주면 사꾸라 소리를 들을까

   
 
봐 모든 것을 반대할 것이다. 그들을 통상적인 존경과 배려로 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좌익척결과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해야한다. 오늘의 역사에서 ‘에비타의 꿈’은 개꿈일 뿐이다.
정상희<전 동아일보 제2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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