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해방 69돌을 맞는다. 또 얼마 전 64돌 째의 6.25남침전쟁 발발일도 지났다. 피로 얼룩진 처절한 민족수난의 역사들이 채 1세기도 안됐다. 36년간 일제식민치하에서 당한 수모와 수탈, 그리고 6.25남침전쟁이 남긴 잔혹했던 역사는 거론조차도 저주스럽다. 그런데도 오늘의 세태는 혼돈과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정치가 그렇다. 왜구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이조 말 당쟁추태를 재현하고 있다. 집권욕망에만 혈안이 돼 ‘국태민안’이나 ‘국리민복’은 안중에도 없다. 대륙 침탈향수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일본의 야욕근성이 또다시 노골화 되고, 적화통일을 주술처럼 되 뇌이고 있는 북한의 도발위협이 목전에 다가서고 있는데도, 남의일 인양 오늘의 정치는 연일 당쟁뿐이다.

얼마 전 본란에 게재됐던 어느 석학의 칼럼이 떠오른다. “우리는 가난과 싸워서 이겼지만 풍요와 싸워서는 지고 있고, 교육을 통해서 성공했지만, 또한 교육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은 오늘의 세태에 정곡을 찌른 분석이다.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포만병증 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게 많아서 병이다. 의식주가 넘쳐난다. ‘절약과 저축’이란 단어가 없어졌다. 주곡식량이 가축사료로 전용 된지는 오래다. 문명의 이기도 넘쳐난다. 어린애들의 손바닥에서 세상정보가 놀아난다. 아날로그 시대는 이미 디지털시대로 바뀌었다. 이모두가 가난과 싸워서 이겨낸 피땀의 노력과, 교육으로 일구어낸 불과 반세기만의 성과다.

정치가 세상을 바꿨다지만, 또한 정치가 문제다. 자칭 똑똑한 사람들뿐이다. 지도자가 넘쳐난다. 권력도 내가 잡고, 통치도 내가 해야 한다는 아집과 독선뿐이다. 누가 누구 앞에 군림하고, 앞서는 것을 보지 못한다. 시기와 질투, 불신 갈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무시한다. 준법질서보다 억지 떼 법이 극성이다. 정치가 민주민생의 정도를 잃고 있다. 설혹 진실이어도 진실을 인정하고 수긍하려하지 않는다. 입만 열면 각자가 모두 전지전능한 지식인이고, 지도자다. 내가하는 것만이 최고의 양심이고 문화 창달이며, 네가 하는 것은 모두 저질의 퇴폐풍조다. 심지어는 국민이 헌법으로 선출한 대통령까지도 “가카 새끼”고, “그 년”따위로 비하하기 예사다. 흉계, 모함, 비방, 계략을 넘어 막말, 저주까지 퍼 대는 게 정치인들의 현실이다. 선량을 자처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행태부터 그렇다.

모두가 기고만장한다. 높은 교육열풍, 치맛바람이 몰고 온 역기능 현상일수도 있다. 지식을 목표달성 수단으로만 가르쳤을 뿐,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진실을 외면한 교육 때문이다. 오로지 지식만 가르쳤을 뿐, 삶의 가치관을 깨닫는 지혜는 가르치지 안했다. 때문에 똑똑한 개체는 많아도, 단합하고 뭉치려는 구심력이 없다. 서로가 부정하고 불신하는 ‘나 홀로’지도자들이 백가쟁명이다.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정치현실에 적중한 교훈이다. 오늘의 문명과 풍요를 더욱 소중하게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주축이 바로 똑똑한 세대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로가 똑똑함만을 경쟁하고 있다. 이면에서 생성되는 시기와 질투, 분열을 외면하고 있다. ‘새 정치’는 떠들어도 새 정치가 없다. 내란음모집단이나, 좌파 불순세력들이 곳곳에 형성되는 원인이다.

분열은 공존질서를 무너뜨리는 패망의 지름길이다. 오늘의 풍요와 문명을 망치고, 불행한 과거로 회귀하는 천형의 길이다. 화합과 질서는 공존하는 삶의 진실이다. 똑똑한 사람, 지도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솔선해서 깨달아야 될 최고의 가치다. 헐벗고 배고프던 50년 전에 비해 행복조건이 넘쳐나도록 향상됐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는 사람이 없다. 사회분열과 불안을 선동하는 자칭 똑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존질서를 모르는 지도자는 아무리 똑똑해도 민심의 지탄을 피할 수 없다. 지탄은 총탄보다 무섭다. 여당 야당 정치인들이 함께 새겨야할 첫째 덕목이다. 우리는 가난과 싸워 문명과 풍요를 일구어냈다. 대한민국위상을 세계열강반열에까지 세웠다. 똑똑한 지도자들을 길러낸 교육의 힘이고, 뭉치고 단합해 가난과 싸워 이긴 금자탑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금자탑이 기울고 있다. 이전투구 하는 정치 때문이다. “내가 해야 된다”는 일부정치집단의 아집과 독선, 오만을 경계하는 이유다. 국가의 정체성을 짓밟고, 내란음모나 획책하는 불순집단을 동조 비호하는 정치는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조 망국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정치가 깨달아야 한다.
유인석<전 경향신문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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