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랫동안 매달 모임을 같이하면서 가깝게 지내오던 후배가 있었다. 그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성격은 쾌활한 편이고 언제나 웃으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평소와 달리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모임에 나온 그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의욕을 잃은 채 상실감, 좌절감에 빠진 듯 어떤 질문을 해도 마지못해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다. 그 후 며칠 안 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쾌활하던 사람이 자살을 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친지에게 투자를 권유해서 벌인 아들의 사업이 실패해서 어려움을 맞게 됐다고 한다. 며칠 전 모임에서 침울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의 처지가 자살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마도 일생을 비교적 평탄하게 그리고 낙천적으로 살아온 그에겐 너무 큰 충격이어서 다른 사람 같으면 쉽게 이겨낼 수도 있었을 상황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여하튼 그는 목숨을 버리고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가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였을 때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자세한 내용을 알아본 후 함께 걱정하며 위로하고 격려를 했으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서 무척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요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 사건이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지난 여러 해 동안 연속해서 OECD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 이럴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구 10만 명 당 30명 안팎이 매년 자살을 하고 있으며, OECD 국가 평균 13명의 2배가 넘는다. 2012년 통계에 의하면 한해 1만4천160명이 자살을 한 것으로 나타나 하루 39명꼴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의 거의 3배나 된다.

또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15%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으며, 이중 상당수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의 자살위험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중 남자는 7개월 안에 여자는 13개월 안에 절반이 실제로 자살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인이나 연예인의 자살이 잇단 자살을 불러온다는 베르테르효과도 입증되고 있다. 몇 년 전 유명배우의 자살소식이 TV에 보도되자 다음날 하루 30명 정도이던 자살자가 78명으로 늘어났으며, 5일째는 90명 가까이 돼 유명인 자살 언론보도가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자살률은 해를 거듭할수록 여려 형태로 계속 급격하게 늘어나 지난 2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 자살률이 머지않아 세계에서 제일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얼마 전 서울 송파에서 반 지하 셋집에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 모녀가 동반자살을 한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 외에도 최근에만 동두천에선 생활고로 30대 엄마가 4살 아들과, 광주에선 40대 가장이 중증 장애를 가진 13살 딸과 4살 아들을 데리고, 울산에선 지체장애 어머니와 무직아들이 동반자살을 했다. 우리 사회엔 지금 생활고와 장애, 질병 등을 비관한 동반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살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고령인구가 늘면서 자녀와 관계가 단절된 채 외롭게 말년을 보내는 독거노인들, 은퇴 후 역할을 잃고 무력감, 좌절감에 빠져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학부모 가족들, 질병이나 장애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가족 등 복지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이 적지 않다.

▲ <사진 : 중도일보>

최근에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한 자살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시도 원인으로 정신과적 증상이 37.1%로 제일 많고, 대인관계 스트레스 31.2%, 경제적 문제 10.1%, 고독 7.1%, 신체질병 5.7%, 기타 8.1%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살시도의 원인을 이렇게 단순히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울증 등 정신적인 증상이나 질병, 장애 등 신체적 문제가 경제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고, 경제적 문제가 정신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등 여러 원인이 상호 작용하면서 자살시도의 원인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최초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우울증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울증환자는 좌절감, 상실감에 잠겨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을 하기 어렵게 돼 자살로 연결되기가 쉽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우울증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임에도 아직 관심과 이해가 부족해 적극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자살에 가장 부담이 되는 질병 가운에 우울증을 3위로 꼽고 있으나 몇 년 후엔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고 증가율도 어느 나라보다 가파르다보니 이대로 방관만 할 수는 없다.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과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선은 경제적 취약계층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복지정책이 긴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청에 의해 대상자를 선정하는 소극적 방법으로는 복지 소외계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송파의 세 모녀 동반자살 사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복지제도를 몰라서 이용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자기의 궁핍한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웃과의 왕래도 없고 주위의 관심마저 없다면 복지 소외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 복지사각지대를 없애려면 찾아가는 적극적 복지정책, 맞춤형 개별복지정책이 바람직한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이웃 간에 서로 소통하고 서로 돕는 연결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가족이나 이웃과 전혀 왕래가 없는 독거노인이나 은둔형 노인, 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자살위험성이 높은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결연한 후 수시로 만나고 통화하며 안부를 확인토록 제도화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농식품부가 농촌 마을회관 등에 공동식사, 목욕시설을 한 후 독거노인들이 외롭지 않게 함께 모여 살도록 한 것은 난방 및 생활비를 절약하는 한편 노인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일 수 있다.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사람은 평소와 달리 주위사람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언행을 한다는 것이다. “살고 싶지 않다”거나 “마음이 괴롭고 몸이 불편하다”는 등 삶이 고통스럽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또 신변을 정리하거나 갑자기 아끼던 물건을 남에게 주는 등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살 위험성이 보일 경우엔 상대방을 혼자 있게 해서는 안 되며 계속 접촉하면서 함께 걱정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부족한 복지전담공무원의 확충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인구 1천 명 당 4명으로 OECD회원국 평균 12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복지담당공무원 3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자살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 문제이며 국가적 문제다. 물질적 복지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범국민적 인간성회복 운동으로 타인에 관심을 갖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웃과 정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자살률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조홍상(본 클럽 편집고문 / 전 대전일보 편집국장)

조홍상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