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 대전일보>

언제부터인가 나에겐 술자리에서 ‘주법강사’ 또는 ‘주도강사’라는 별명이 타칭, 자칭으로 붙어다녔다.

주도나 주법을 강의해 본 적도 없고 공부를 하거나 연구해 본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나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아마 술자리에서 동석자에게 극히 상식적이긴 하지만 ‘술은 이렇게 마셔야 한다’는 잔소리를 가끔 한 때문에 그런 별칭이 붙여진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 볼 뿐이다.

아무튼 내 주위에 있는 적지 않은 술친구들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그렇게 부르고 후배들 중 더러는 정색을 하고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느냐”고 물어 오기도 하자 지금은 내 자신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면서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할까?”, “술을 마신 후 어떻게 삭여야 할까?”를 생각해보는 때가 많아졌다.

내가 술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꽤 오래전 어렸을 때였던 것 같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가 아닌가’ 기억된다.

술과의 인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 당시 우리 집안은 넉넉하지는 못했어도 양식을 걱정할 형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할아버님이 계시는 고향집이나 아버님이 계시는 서울 집엔 항상 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아침·저녁이면 꼭 반주를 드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은 항상 이불로 싼 술항아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귀가하면 어머님이 자주 술지게미에 황설탕이나 당원을 타서 끓여주시곤 했다.

말이 지게미지 술항아리에 용수를 박고 약주를 떠낸 다음 막걸리를 거르기 전이어서 주도가 상당히 높았다. 지게미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쩔쩔맬 때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술과 익숙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후 6·25전란을 겪으면서 부산으로 가신 아버님과 떨어져 살면서 술과 지게미와의 만남이 뜸해졌다. 하지만 방학 때 고향엘 가면 집성촌으로 친척들이 모여 사는 이집 저집으로 인사를 다니다 보면 꼭 술상이 나와 한 두잔씩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내 고향은 그때까지 조혼의 풍습이 남아 있을 정도로 깊은 산골 마을이어서 고등학생이면 머리를 박박 깎았어도 어른 대접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술, 담배를 해야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머리를 기르자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님이 “남자는 술, 담배를 해야 한다”시면서 아버님께 하시던 그대로 조그만 쟁반에 술 한 대접과 간단한 안주 한 접시, 그리고 담배 한 갑을 얹어 갖다 주시곤 했다. 이때부터 나의 음주력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할만하다.

대학에 다닐 때나 군에 있을 때는 친지들과 어울려 기회가 되면 사양 않고 술을 마셨다. 이때는 주량도 모르고 풋술이라 과음하기 일쑤여서 자주 혼이 나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동료나 선후배들과 어울려 또는 업무와 관련해서 잦은 술자리를 가져왔다.

지금도 비교적 자주 술을 마시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주량은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음주에 큰 부담 없이 꾸준히 술을 마셔온 것은 타고난 체질 탓도 있겠지만 가능한 한 무리하지 않은 덕으로 생각된다.

술은 좋을 때도 마시고 나쁠 때도 마신다. 즐거울 때도 마시고 괴로울 때도 마신다. 애경사 때는 슬픔을 위로하고 기쁨을 축복해 준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만나 담소를 하며 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술을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삭이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술은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술은 간, 심장, 구강, 위, 췌장 등에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 돼 음주자의 발병률이 비음주자에 비해 굉장히 높다고 한다.

또한 알코올 중독은 뇌세포를 손상시켜 알코올성 치매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음주로 인한 질병치료비, 생산성 감소 및 사망, 사고 등에 의한 금전적 피해액이 한 해 수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술에 취하면 감정을 억제하는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담해지고 흉폭해지기 쉽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이 때문에 저질러지는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4대 강력범죄가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술이 마냥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당한 량의 음주는 기분전환과 함께 소화를 촉진하고 신진대사를 개선할 뿐 아니라 심장병, 뇌졸중, 유방암 등에 걸릴 위험성을 낮춰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줘 장수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가 알코올성 치매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최근 네덜란드의 한 대학교수 연구결과에 의하면 매일 한 두잔의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고 한다.

한 두 잔의 술 마시는 사람이 치매 걸릴 확률 낮아

술이 해로운지 이로운지 공과를 따지기 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음주가 해로운 점이 많다고 해도 담배처럼 강력한 금주운동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다.

대대적인 금연운동을 벌이면서 요즘엔 음주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TV의 연속극에서도 담배 피는 장면이 사라진 대신 음주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술을 얼마나 어떻게 마셔야 할까?’가 문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을 적당히 마시면 여러모로 이로울 수 있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해로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술을 마시다 보면 자제력을 잃고 과음하기가 쉽다.

어렵긴 해도 자신의 주량에 맞춰 절제하는 강력한 의지로 적당량의 음주를 습관화해야 한다. 또 같은 량의 술을 마셔도 덜 취하려면 충분한 안주와 함께 천천히 나눠서 마셔야 한다.

다른 종류의 술과 섞어 마지지 않아야

빈속에 술만 들어가면 우리 몸의 알코올 흡수 속도가 빨라져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속히 상승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술을 천천히 마실수록 뇌세포로 가는 알코올 량이 적어지고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돼 해독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원샷’이나 ‘건배’를 외치며 한 잔을 단숨에 비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음주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술은 다른 종류의 술과 섞어 마시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술을 혼합해서 마셔도 더 취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흔히 마시는 폭탄주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양주와 맥주를 섞으면 주도가 인체에 흡수되기 가장 적합한 20~25도 정도가 돼 빨리 취한다고 한다.

더구나 독주와 맥주를 섞으면 맛이 부드러워져서 많이 마시게 될 것이다. 흔히 폭탄주는 단숨에 마시길 강요당하기 일쑤여서 짧은 시간에 많은 량을 마시게 되기 쉽다.

술은 권하는 맛에 먹는다고 한다. 요즘엔 이전과 달리 술을 강권하는 경우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런 풍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술을 강권하다 보면 자신도 강요받게 돼 더 마시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함께 요즘엔 술잔 돌리기도 많이 줄어들어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항상 평소 주량에 맞춰 적당히 마시고 남에게도 과도한 강요는 삼가는 게 좋다. 그래야만 건강에도 좋고 술자리도 즐거울 수 있다.

과음 후 해장술은 절대 금물

과음 후 해장술은 안 마시는 게 좋다고 한다. 지난 밤 과음으로 간과 위장이 지쳐 있는데 다시 알코올이 들어가면 숙취가 해소 될 리 없다. 알코올이 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두통이나 속쓰림이 가시는 듯 숙취의 고통을 덜 느끼게 될지 모르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과음 후엔 칡차, 인삼차, 꿀물, 과일, 채소 등을 많이 먹는 게 좋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술좌석에서도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정신이 해이해져 자제력을 잃고 말과 행동이 흐트러지기 쉽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동석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술자리를 망치게 하기 일쑤다.

흔히 술은 어른 앞에서 배우라고 한다. 어른이나 상사, 선배와 함께라면 말 할 것도 없지만 동료나 후배와 함께한 자리라도 긴장을 풀지 말고 정신을 차려 예의를 지키려 노력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술자리에서 항상 언행을 조심하고 예의를 지키며 반듯한 자세를 지키려 노력하면 과음을 피할 수 있고 건강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수도 하지 않게 된다. 건전한 음주습관, 예의바른 음주문화를 정착시키면 술로 인한 해악을 줄일 수 있고 밝은 사회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조홍상(본 클럽 회원 / 전 대전일보 편집국장)

조홍상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