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대전일보>

영화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외화건 방화건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이는 중고교시절부터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나이 70이 넘은 최근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다소 식긴 했지만 영화관을 자주 찾는다.

특히 명화나 문제작은 빠지지 않고 보고 있다. 또 작품성이 떨어져도 재미나는 작품과 화제작은 놓치지 않는다. 최근에 개봉된 국내외 화제작도 대부분 감상했다. 특히 관객 1000만 명을 동원한 9개 영화는 모두 영화관에서 봤다.

얼마 전 관객 1000만 명을 훌쩍 넘긴 ‘변호인’(감독 양우석)을 감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시절에 변호인이었던 1981년의 부림(釜林)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한마디로 꽤 잘 만든 영화다. 신인감독치고는 완성도가 뛰어난 편이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상영시간 내내 긴장감이 팽팽했고, 송강호를 비롯한 출연진의 연기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한 구석이 적지 않았다.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대목이 많고 노무현을 너무 미화한 것 같아서다.

좌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사건을 고의적으로 왜곡했다는 비난도 사고 있다. 시작 전 자막을 통해 ‘허구’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많은 관객들은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의 속성이다. 이 사건은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 부산지법 형사3부는 지난 2009년 이 사건 재심판결에서 ‘계엄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유죄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유죄가 확정된 건 아니다.

자막 통해 허구 밝히고 있지만 관객 사실 여겨

국가보안법위반혐의를 포함해 사건 전체에 대해 재심결정이 내려져 현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제작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들은 감동했다고 말한다. 이는 좌파성향의 관객들뿐만 아니고 우파성향의 관객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실제로 필자의 인근 좌석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송강호 김영애 곽도원 등의 뛰어난 연기도 뒷받침했다.

많은 관객이 감동하고 단순히 재미있다고만 해서 좋은 영화는 아니다. 사실이 뒷받침돼야한다. 이 영화의 진실과 허구는 어떤 것일까?. 주인공 송우석이 부림 사건의 변호인이란 것은 사실이다. 부산상고를 나와 대전에서 판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변호사를 개업해 부동산등기와 세법전문변호사로 많은 돈을 벌어 요트를 갖게 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권변호사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국밥집 아들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것은 허구다.

피의자들 고문 사실을 증언해준 의무관은 실제로 없었다. 또 송우석의 법정 맹활약은 과장돼 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노무현 변호사의 존재가 희미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재판 중 변호하는 변호사를 판사가 윽박지르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판사가 경찰이나 검찰과 한 통속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법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검찰과 경찰, 판사까지 가세해 사건을 조작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선고 앞두고 만들어 재판에 영향 줄까 우려돼

당시 담당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의 증언은 경청할 만하다. 그는 “부림사건이 명백한 공산주의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친노들이 노무현대통령시절 “부림사건이 친노들의 정통성을 빛내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해 과거사진상위원회 등을 통해 무죄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자신이 김승규 법무장관에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하는 게 되므로 대통령에게 큰 누가 될 것이라고 건의해 더 이상 공론화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 대전일보>

고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다, 당시 피의자 이 모 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대목은 시나리오에 삽입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좌파적 시각에서 만든 영화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가 지난해 12월19일 개봉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날은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다.

어찌 보면 친노 결집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또 변호사 송우석이 박종철 추모시민대회(1987년 2월)시위에 앞장서 구속기소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실제 구속된 것은 대우조선노동자 사망사건(1987년 8월)이었고, 이때 부산지역 99명의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이 장면은 마치 미국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을 빌려 온 듯한 느낌이다. 관객에 감동을 준 이 장면이 명화를 차용했다 해서 큰 허물은 아니다.

암울했던 시절 진실 허구 뒤범벅 진실성 훼손

영화 ‘변호인’은 암울했던 군사정권시대의 아픔을 묘사해 대박을 날렸지만 진실과 허구가 뒤범벅이 돼 진실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사건 속의 인권 보호면모만 집중 부각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 속 실재인물 상당수가 ‘악의적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고영주 변호사는 “이 영화를 봤느냐”는 질문에 “어차피 자기들 입맛대로 짜깁기해서 만든 영화인데 내가 봐서 관람객 숫자를 늘려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영화에 좌파세력들은 크게 고무돼 있다. 고 노무현대통령묘지를 참배하는가하면 야당 정치인들은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하는 등 들떠있는 분위기이다. 이 영화의 감독을 비롯한 상당수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야당후보 운동을 했던 영화인들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긴 현재 우리나라는 영화계, 역사학계, 언론계 등 문화예술분야 전반에 걸쳐 좌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파 쪽에서도 이런 유의 영화를 만들면 될 게 아니냐고 한다.

박정희대통령이나 정주영, 또는 박태준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거 유신시대의 ‘팔도강산’시리즈처럼 만들어서 어찌하겠다는 건가. ‘영화는 어디까지 영화로 봐야한다’는 논리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는 기본적으로 허구지만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논란 속의 영화는 사실에 기초한 제작이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런 정치 사회적 영화의 내용을 허구와 구분하지 못하고 사실로 믿기 때문이다.

권오덕(본 클럽 회원 / 전 대전일보주필)

 

권오덕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