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구독하는 한 월간지에서 읽은 한 아버지의 첫 사랑과 간절한 소망을 아들이 소개한 글이 너무나 좋았다,

아버지는 시골 고향에 산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산지도 벌써 여러 해. 아흔을 넘기신 아버지를 아들이 아무리 서울로 모시려고 해도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겠다’ 는 결심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고 여전히 딱딱하단다.

아들은 시간만 나면 아들을 데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러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던 고향집에 도착해 텅 빈 마당에서 기다릴 때 아버지가 걸어 들어 왔다. “아버지 어디 갔다 오세요?”라는 인사에는 아무 말도 않고 주방으로 바삐 들어간 아버지는 냄비에 물을 받으며 비로소 웃더란다. “손자가 오랜만에 왔으니 라면 특별히 맛있게 끓여주마”라며.

▲ TV화면 캡쳐(인터넷에서 퍼옴)

그 날 밤 손자가 잠든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책 한권을 꺼내 뒤적이더니 책 갈피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종이에는 아버지가 태어난 마을 주소와 전화번호와 함께 또 다른 하나의 주소와 전화번호,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종이를 받아든 아들이 “이게 뭐예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웃더니 겸연쩍어 하며 종이를 다시 책 속에 그냥 넣더란다.

다음 날 아침 서울로 돌아가려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더니 잠시 후 결심이 선 듯 “너희 엄마를 만나기 전에 내가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얼마 전 그 사람이 이곳에 산다는 연락을 받았다. 죽기 전에 용기 내어 한번 만나보련다. 먼저 떠난 너희 엄마도 허락하리라 믿는다”는 아버지의 말을 경청한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으며 웃어주었단다. ‘아버지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그간 얼마나 고심했을까’를 생각하며.
아들은 데려왔던 아들을 먼저 서울로 올려 보내고 아버지가 적어준 그 주소를 찾아갔다. 곱게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아버지의 함자를 대고 자신은 아들이라며 아버지가 한번 뵙고 싶어 한다는 간절한 뜻을 전했다.

할머니는 빙긋이 웃으면서 “이제 와 다 늙어 그분을 만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처음에는 거절하더라는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는 아들의 거듭 되는 그분의 진실한 뜻을 거절할 수가 없었는지 결국 승낙하더라는 것이다.

일주일 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친 아버지는 시간이 넉넉한데도 아들을 재촉하며 시계를 자꾸 보더라는 것이다. 차타는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는 그 날은 차를 타고도 전에 없이 많이 웃으며 많은 말을 쏟아냈다는 아들의 그날 아버지 모습.

가난했던 아버지는 부잣집 딸인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보고 지냈다는 첫 사랑이었다지만 첫 사랑 그 할머니를 찾아가는 아흔 한 살 아버지의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나 젊어 보였다며 아버지 못잖게 좋았다는 아들이다.

박천규(본 클럽 고문 / 전 대전MBC 상무)
 

박천규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