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청탁을 받고 언뜻 생각나는 연배 한 분이 있다. 처음 만난 것은 1968년 봄. 1966년 군을 만기제대한 후 얼마간의 공백기를 거쳐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때다. 신입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응시, 다행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이렇게 해서 한 지방방송사의 보도기자로 취업 사회생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얼마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기관을 출입하게 되었다. 첫 출입처는 통과의례처럼 되어있는 경찰. 기자실에 들러 선배기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연배는 출입 첫 날인 바로 그 날에 만났다. 반백의 연배는 남달리 따뜻하게 맞아주며 “출입을 하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려워 말고 말하라”면서 굳게 악수를 하고는 빙긋이 웃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당시 몸담았던 방송국은 서울에 본사를 둔 라디오만의 지방방송국이었다. 보도실장은 늘 ‘라디오 방송인만큼 경찰에서 나오는 첫 기사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냐에 따라 방송 뉴스는 물론 방송에 대한 신뢰를 좌우한다’며 분초를 다투는 뉴스경쟁이라며 한 짐을 잔뜩 지어주었다.

이렇게 시작한 방송기자 생활을 한 얼마 후부터 정오뉴스가 끝나고 나면 연배는 “낮 뉴스 잘 들었다”며 빠진 것을 알려주고 자신이 모르는 뉴스는 알려달라면서 선배기자로서 청취반응을 보여주며 늘 격려해주었다. 또 다른 통신기자도 “낮 뉴스를 반드시 듣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간다”며 그 날 정오 경찰 뉴스에 대한 청취 평도 한마디씩 해 주었다.

연배는 본사에 송고할 기사를 열차편으로 서둘러 보내고 난 후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일은 끝났느냐?”며 “우리 만나서 소주나 한 잔할까?…단골로 다니는 그 집으로 오라”고 했다. 단골을 찾으면 연배는 거의 매번 먼저 와서 자릴 잡고 앉아 들어서는 나를 향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연배는 한 잔을 권하고 단골 주인아저씨는 좋은 것만 골라 놓은 족발이라며 내주며 많이 들라고 했다. 한잔씩 오가는 새, 연배는 새내기 출입기자의 생활을 물으며 그간에 모니터한 내 기사에 대한 의견을 주며 참고하라고 했다.

이렇게 한 1년이 흐른 1969년 연말, 같은 자리를 함께 한 연배는 버스로 귀가하길 마다하며 바쁘지 않으면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어둠이 짙게 깔려 가는 길을 걷던 연배는 “신앙생활을 하느냐?”고 물었다. 아직 하지 않는 다는 말에 자신은 가톨릭신자인데 신앙생활 하는 것이 괜찮다며 하늘을 쳐다보더니 “부담은 갖지를 말고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연배는 그 후 20년이 지난 1989년 내가 영세를 받을 때까지 해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는 연말이 되면 같은 권유를 되풀이했다. 선화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영세 신부님은 성당 신자 중에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 연배 이름을 댔다. 신부님은 그 이름을 듣고는 무척 반기며 “그 분이면 대부로 아주 훌륭한 분”이라며 쾌락하셨다.

그래서 세례를 받게 된 사실과 신부님이 연배님을 대부로서 쾌락하셨다며 허락해주시길 바란다는 전화를 드렸다. 연배는 “아니 오는 부활절에 세례를 한다고?” 라고 반문하시고 놀라고 반기시며 쾌락하셨다. 연배는 아내도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하자 “대모는 정해졌느냐?” 며 대부님의 사모님인 수산나 자매를 먼저 말씀해 주셨다.

박천규(본 클럽 고문 / 전 대전MBC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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