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세페 베르디

▲ 리하르트 바그너

올해는 ‘오페라의 신과 황제’인 베르디와 바그너탄생 200주년이었다. 위대한 두 작곡가의 탄생년도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그들을 기리는 음악회가 열렸다. 특히 탄생지인 이탈리아와 독일은 다양한 행사를 벌여 세계의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다투어 연주회를 가졌고, 방송에서도 특집으로 두 천재를 기렸다.

사실 두 작곡가를 빼고 오페라를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두 작가가 남겨 놓은 오페라의 유산은 지대하다. 한국최초의 오페라무대는 1948년 서울 시공관에서의 베르디작곡 춘희(라트라비아타)였고, 바그너 최초공연은 197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었다. 춘희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지만 바그너작품은 만나기가 쉽지 않아 안타깝다.

바그너는 전 세계적으로 베르디에 비해 공연회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어렵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음악회에 비교적 자주 가는 편인 필자 역시 베르디오페라는 수십 번 보았지만 바그너오페라는 아직까지 접해보지 못했다. 난해함과 제작상의 어려움으로 국내에서 공연자체를 꺼리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LP나 CD, 테이프로 들을 따름이다.

혁명적인 바그너 악극 국내에서 볼 수 있어야

“탄생 200주년인 올해는 무대에서 볼 수 있겠지”하고 기대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서울 등 전국 어디에서도 공연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독일을 비롯한 외국오페라단의 내한 공연조차 없었던 것 같다. 탄생 200주년에 오페라황제의 작품을 한 편도 못 보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곡이나 전주곡이 양념처럼 연주될 뿐이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년 5월22일～1883년 2월13일)와 주셉페 베르디(1813년 10월10일～1901년 1월27일)는 같은 해에 태어났고, ‘오페라의 신’(베르디)과 ‘오페라의 황제’(바그너)로 추앙받았다. 누가 더 유명한가? 누가 더 훌륭한가? 이에 대한 평론가들의 판결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둘의 음악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어서 질문 자체가 어리석을 뿐이다.

그리스도와 석가 중 누가 더 훌륭한가를 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작품과 각자의 인생을 살펴보고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베르디 작품은 대중적이어서 전 세계인들에 어필하고 있는 반면 바그너는 어렵다. 그렇지만 바그너는 바그너를 미치게 좋아하는 바그너리언이 있을 정도다. 베르디는 인격적이었지만 바그너는 여성편력이 심하고 인격에 문제가 많았다.

베르디작품 연주 많으나 바그너악극 거의 없어

바그너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는 친구의 아내든 귀족의 아내든 상관하지 않고 유혹했다. 반면 베르디는 인격자로 알려졌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확립한 반면 바그너는 독일 등 북유럽의 신화를 바탕으로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베르디는 성악을 중시하고 깊은 표현력과 구체적인 성격묘사로 극의 효과를 높였다.

그러나 바그너는 성악보다는 관현악을 중시해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구분을 없앴다. 무한선율의 반복과 불협화음이 자주 등장했고 연주 시간이 무척 길어 인내를 요한다. 4부작인 반지시리즈는 무려 14시간이 넘는다. 그는 오페라라 하지 않고 악극이라 불렀다. 대본도 직접 썼다. 복잡한 선율 때문에 금관, 목관 등 엄청난 악기가 동원돼 스케일이 크다.

베르디가 노래에 뛰어났다면 바그너는 작품 전체의 극적전개를 중시했다. 따라서 베르디가 가볍고 밝다면 바그너는 어둡고 무겁다. 바그너의 악극은 무대에 서는 성악가들이 노래 부르기가 무척 어렵다. 바그너테너를 특별히 헬덴테너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베르디주인공들은 대체로 나약하고 선량한 반면 바그너주인공들은 힘차고 영웅적이다.

한국인 바그너성악가 많이 배출돼 국내공연 가능

바그너를 특히 좋아한 것은 히틀러와 나치였다. 이 때문에 바그너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철학자인 니체도 한 때 바그너음악을 숭배할 정도로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돌아섰다. 바그너는 반유대주의자여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를 연주하지 않는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것은 베르디이지만, 후대에 미친 영향력은 바그너가 훨씬 크다.

베르디가 보편적인 인류에 어필한 휴머니스트였다면 바그너는 지독하게 자기본위적인 음악가였다. 그렇다고 바그너의 악극을 폄훼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인류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바그너에겐 ‘바그너협회’란 게 있지만 팬들이 훨씬 많은 베르디에겐 없다. 바그너의 성지는 독일 바이로이트가 있지만 베르디에겐 이런 특별한 성지가 없다.

필자역시 중고교 시절부터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와 나비부인, 아이다 등을 자주 접했지만 바그너엔 생소했다. 40여 년 전 영화 카운터포인트(찰톤 헤스턴 주연)에서의 탄호이저서곡을 감명 깊게 들었고,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발쿠레의 비행’을 듣고 깊은 감동을 느꼈다. 이후 로엔그린, 뉴른베르그의 명가수, 탄호이저, 리엔치 등 그의 악극을 맛봤다.

“한국 음악도들 때문에 연습실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바이로이트에서 그의 악극을 보았으면 하는 게 꿈이다. 어찌 보면 그건 사치스런 꿈이요,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악극은 이미 10년 후까지 예약이 차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라도 공연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전이면 아주 좋고, 서울이나 대구라도 좋다. 그러나 그게 언제 공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서양음악계에서는 “한국 음악도들 때문에 연습실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40년 역사의 바이로이트축제에서 이제 한국인이 주역을 맡을 정도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바그너악극에 많이 출연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독일 오페라단의 한국공연이 이루어질 순 없는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성악 강국으로 국제 콩쿠르의 단골우승국이다. 그런 한국에서 바그너탄생 200주년에 그의 악극 하나 공연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권오덕(본 클럽 회원 / 전 대전일보 주필)

 

권오덕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