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새벽 지난 밤 소식이 궁금해 평소보다 빨리 컴퓨터를 열었다. 놀라게 한 소식은 좋아하던 최인호 작가가 전날 오후에 선종했다는 부음. 순간 망연자실 한동안 멍하니 앉았다가 작가의 ‘산중일기’가 놓여있는 방으로 갔다. 작가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을 것만 같아 서둘러 차례를 열어보았다.

1부 ‘일상에 관하여’ 쓴 글 중에 ‘나는 <가족>안에서 풍요로웠고 <가족>안에서 스승과 부처님을 만났다’는 에세이가 세 번 씩 읽게 했던 감흥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 에세이는 작가가 ‘샘터’사로부터 매달 한편의 콩트식의 연작소설의 연재제의를 수락, ‘가족’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것이다.

1975년 9월 가족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작가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두 살 난 아들 도단이와 네 살 난 딸 다혜를 두고 있었다. 작가 자신은 ‘젊은 나이에 철부지 남편이자 아버지였지만 가족이야말로 신이 내려주신 만발한 꽃밭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가족을 주제로 한 연작소설을 연재하게 됨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가족이야말로 소재가 고갈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소재’로 여겼다. 그는 내가 쓴 작품 중 <가족>만큼 광범위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은 없었을 것‘이라 자랑스럽게도 여겼다.

‘샘터’에 <가족>이 100회 연재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1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그 당시 10만부는 슈퍼베스트셀러. 이 때 나온 책을 선전하는 광고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던 작가. ‘아빠, 아내, 다혜, 도단이, 이들 네 가족이 어우러져 가꾼 생활의 꽃밭에 싱싱하게 피어난 100 개의 꽃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아름다운 컬러 앨범으로 장식하게 해 주는 마법의 掌篇小說’.

<가족>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공영방송 KBS에서는 1년 동안 연속극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었으므로 방송을 시청할 때마다 두 애들은 ‘아빠, 우리는 도대체 언제 나오느냐?’고 불평도 했단다.

▲ 고 최인호 작가

작가가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일어나리라고 예상한 대로 연재 도중 1987년에는 작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셋째 누이와 집 맏이인 첫째 누이가 이어 돌아가셨다. ‘네 살 난 다혜도 시집을 가고, 어느 날은 내가 손자를 봐 할아버지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족>을 연재하다가 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작가. ‘그러나 그런 생각은 막연한 상상이었는데 실제로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보면 나는 <가족>을 연재하면서 살아가고 늙어가고 인생을 배워 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가족이라는 소설을 통해 그때그때의 조각난 생활을 맞춰 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생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퍼즐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출간된 <가족>은, 300회나 연재된 가족은 여전히 미완성이며 아무도 그 연재 횟수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는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하느님만이 그 연재가 언제 끝나리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연재가 끝난다고 어찌 내게서 가족의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겠는가’.

언젠가 한번은 300회 기념자축연에서 아들 도단이 녀석이 이렇게 시건방을 떨었다며 털어놓은 작가. ‘제가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거의 친구처럼 지냅니다. 아무래도 그러니까 아버지는 정신연령이 좀 낮은 듯하고요,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 더 어립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잘 돌봐 줘야 할 텐데...’

이에 아버지-작가는 ‘시건방진 도단이의 말 그대로 나는 집에서 가장 유치하고 정신연령이 낮은 저능아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내 스승이자 부처님이다. 어쩐지 나는 그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이 얼마나 작가의 꾸밈없음을 잘 드러낸 일면인가?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여행에 들어간 슈퍼베스트셀러 <가족>의 작가가 먼저 선종한 가족들도 만나 ‘신이 내려주신다는 가족 만개한 꽃밭’을 거닐며 영원한 안식과 명복이 함께 하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2013. 9 . 28...

박천규(본 클럽 고문 / 전 대전MBC상무)

 

박천규  mo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