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보다 세상이 참 좋아졌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희를 넘긴 어떤 할아버지는 10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눈치를 보며 2남 3녀의 집을 전전하다 자식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밧줄에 목을 맺다.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20대 초반 주부는 남편의 계속된 외도에 울분을 참다 못해 11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워 온 40대 한 농부는 농협 빚과 사채에 시달려 오다 다섯 가족을 남긴 채 농약을 삼켰다. 최근엔 학교 동료들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 온 어린 두 중학생이 죽음을 선택했다. 한 학생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로 끝나는 유서까지 남겼다. 두 학생은 부모나 교사에게 도움도 청하지 못했다.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할아버지나 주부, 농부, 두 중학생의 죽음은 같다. 허나 두 중학생의 죽음이 더욱 큰 슬픔과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한창 배우고 뛰어 놀, 아직은 어리광 부리고 사랑 받아야 할 꽃다운 나이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는, 그것도 또래나 선배 학생들이 장난으로 저지른 폭력의 제물이 됐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간 자식의 한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피해 학생 부모의 고통이 어떨 지는 그 부모가 아니면 결코 헤아리기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신비 자체이다. 하나의 생명을 다른 생명이 대신할 수 없고, 또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릴 순 없다. 그러니 세상에 한 번 왔다가 가는 생명이야 말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 또한 내 생명이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모든 자살 행위에는 그 동기가 있다. 가령 엄청난 빚에 시달리거나 생활고,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불치병이나 난치병, 가정불화, 심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의지 박약, 자제력 상실, 폭력과 고문, 누명, 극도의 분함과 억울함, 매몰찬 세상에 대한 비관, 이 밖에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 등등...

또, 모든 자살 행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살아야 할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나 형제․친지․이웃․동료․친구, 돈이나 재물․부귀․권력․지위․명예 등 이 세상 어느 누구, 그 어느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절망’이 바로 그것이다. 절망을 뛰어넘지 못해 선택하는 자살-. 그러나 그 절망을 극복치 못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사랑과 믿음의 부재나 소통의 단절, 무관심, 방관, 무자비하고 냉혹한 현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불효, 배우자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남편의 빗나간 외도, 채권자의 무자비함, 자녀에 대한 부모와 교사․동료 등의 무관심, 매정한 이 세태가 없었던들 홀아비와 아내, 농부, 어린 학생 등의 죽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흔히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고 한다. 미래의 주인공이요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또한 참교육의 실현은 가정과 학교 사회 국가가 서로 하나가 돼 유기적인 기능을 다 해야 한다고들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기가 막히고 답답한 노릇이다.
가르침과 배움에는 한계도 나이도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다. ‘세 살 버릇 여든 살 간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아이들은 싸우며 자란다’, ‘열 손가갈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무자식이 상팔자다’, ‘자식이 웬수다’, ‘자식 농사 망쳤네’ 등등-. 자식을 제대로 기르고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속 썪는 일인지를 잘 나타낸 경구들이다.

                     내 생명 소중하듯 남의 생명 소중 인식 확산 돼야 
                     절망이 부른 자살......사랑 단절․소통 부재 등 원인
                     빗나간 부모 사랑 자식 망쳐.......사랑의 매 들어야
                     점수․입시․능력 위주 아닌 균형 잡힌 전인교육 필요
                     폭력 가해자․학부모 반드시 대가 치르는 방안 필요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도 있다.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 나온 말이다. 보통 3대에 이르는 많은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자녀들은 집 안의 가장 연장자가 수저를 먼저 들은 뒤에야 밥술을 뜨는 등 윗 어른에 대한 공경과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자매 간 사랑과 우의, 친인척과 이웃에 대한 예의와 배려 친절 등 가정 공동체 및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윤리덕목과 규범을 배웠다. 사람이 행할 도리와 윤리교육의 산실인 셈이다. 설령 밥상머리 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식의 잘못이 드러나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시비가 가려지고 때로는 꾸지람과 혼남, 때로는 사랑의 매가 보태지기도 했다.

세상이 각박해 지면서 대가족이 핵가족화 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때문에 30-40대 가정 대부분이 자식도 하나 아니면 둘에 그치고 있다. 부부 서로 바삐 돌아가는 세상사에 쫒기다 보니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도 흔치 않다. 이런 저런 핑계로 늙은 부모 모시기를 꺼려하거나, 아예 회피하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이제 밥상머리교육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행여 귀한 내 자식 비위에 거슬리거나 상처 줄까 ‘오냐’, ‘오냐’ 하며 자식의 잘못에 대한 사랑의 매도 들지 않으니 나약한 자식에,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은 고사하고 대드는 아이가 될 수 밖에.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일류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남의 자식이야 어찌됐든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빗나간 부모의 사랑이 오히려 우리의 귀한 자식들을 속으로 멍들고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학교 폭력과 관련, 학교나 주변 환경에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혹자는 더불어 사는 세상의 근간인 인성교육은 뒷전인 채 높은 점수 따기와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학내 폭력 발생 시 교사들의 안일한 대처와 이를 감추려 쉬쉬하는 관행 등을 꼽고 있다.

이 밖에 ‘학교폭력 키우는 건 침묵’, ‘초.중.고 학생 57% 폭력 당하고도 신고치 않아’, ‘학교폭력 보고도 62%가 모른 척’, ‘가해학생 63%가 괴롭히는 이유로 장난 또는 이유 없음을 꼽음’, ‘한국학생 OECD국가 중 학업성취도 1-4위로 최상위이나 남과 어울려 사는 사회성은 36개국 중 최하위’, ‘유치원생 인성교육 잘 되는데 초등 1학년 교실은 정글의 법칙, 6학년 교실은 힘센 짱이 지배하는 독무대’, ‘교사들 가정에 책임 돌리기 일쑤’, 가해학생 폭력게임에 빠진 경우 많아’, 교사들 잡무 많아 생활지도 소홀’, ‘부모 학교에 인성교육 떠넘겨’, ‘폭력 생겨도 아이들끼리 쉬쉬’ 등등-. 학교폭력과 관련, 두 중학생이 목숨을 끊은 뒤 도하 언론들이 쏟아낸 기사 제목들이다. 이들 제목 하나 하나가 오늘의 우리 가정과 사회 전반에 걸쳐 제기된 문제점들이다.

사후 약방문 격이지만 교육부 등 관계당국에서도 많은 대책과 대안을 쏟아 냈다. ‘학교폭력 학생부에 기록 남기고 형사처벌 연령 14세에서 12세로 낮춘다’, 학교폭력 범죄인식 확산시켜 일탈행위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분위기 만든다‘, ’폭격 목격 때 호루라기 불기 운동 추진’, ‘폭력신고 전화 117로 통합’, ‘부모 동의 없이 강제 전학 추진’, ‘학내외 폭력 멈춰 운동 전개 및 확산’, ‘경찰 학교폭력 전담반 편성 운영’, ‘사이버 따돌림도 학교폭력으로 처벌’ 등등...

사실 폭력은 언제 어디서고 있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책과 대안,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가 있다 해도 말이다. 이는 인간 본성 깊숙한 곳에 폭력의 뿌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폭력의 본성은 지속적인 인성교육과 학습․수련 등을 통해서만 순치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으로 충만한 참다운 가정이 출발점이다.

두 중학생의 죽음 이후 학교폭력으로 인한 희생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학부모와 학교, 관계 기관이 서로 하나가 돼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가고 있다. 아마도 그 방향은 능력 위주가 아닌 지․덕․노․체의 균형 있는 전인교육, 학생들의 건전한 여가 선용, 폭력게임 및 음란물 추방, 폭력 가해자와 해당 학부모의 경우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방안 등등일 게다. 어린 두 중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제도적인 좋은 방안들이 마련됐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일 게다.

이용웅(본회 회원 · 연합뉴스 前 충청취재본부장)

이용웅  ywl3@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