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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내게 준 선물많이 걷고, 많이 읽고, 영화 실컷 보며 시간 활용

지난겨울에 발생한 코로나19가 봄·여름을 거쳐 가을이 오고 있는데도 좀체 소멸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팬데믹 수준이다. 이젠 코로나가 일상화된 세상이다. 내일 모레가 팔십인 친구들은 “코로나로 지새며 가버리는 세월이 마냥 허무하기만 하다”며 한탄을 한다. 내 신세 역시 처량하긴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음악회나 영화관 가본지가 언젠지 모른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재미로 다니던 영어배우기와 성악수업 역시 밥 먹듯 휴학한다. 자주 찾던 도서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대출받을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신청 다음날 도서관 현관에서 책을 건네받고 2주일 내로 반납하면 된다. 보통 2주일에 책 7-8권을 빌려 아내와 함께 읽는다. 코로나 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된 건 오로지 코로나 덕분일 게다.

코로나19가 내게 준 선물은 여럿 있다. 집안 정리를 많이 한 게 그 중 첫째다. 아파트로 이사 온지 올해로 만 10년이 넘어 정리할 물품이 꽤나 많아졌다. 외출 안 하고 한 달간 책과 구닥다리 물건을 많이 정리한 것 역시 코로나가 준 선물이다. 우선 아내와 함께 ‘버킷 리스트’ 아닌 ‘버릴 리스트’(?)를 만들었다. 태생적으로 정리에 둔감한 나여서 집안 곳곳에 널려진 게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나는 책을 서재에서만 읽지 않고 거실과 안방에서도 읽는다. 또 한권씩 완독하지 않고 두세 권씩 읽는 스타일이라 여기 저기 책이 흩어져 있게 마련이다. 글 쓰는데 참고할 스크랩북과 메모지등도 마찬가지다. 또한 돋보기·복용약·노래악보와 최근엔 마스크까지 아무데나 놓아 필요할 때 찾느라 애 먹는다. 이러니 아내한테 쫓겨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정리의 첫 걸음은 책이다. 안 보는 책 수백 권을 고르느라 애먹었다. 10년째 창고에 썩혀둔 골프채도 골동품상에 줬다. 잘 입지 않는 옷과 모자, 감사패, 그리고 사진 등도 모두 정리했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신변 정리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잘 안 쓰는 살림살이와 가재도구 등도 이참에 정리했다. 그러나 1년 정도 세월이 지나면 버려야할 물품이 다시 생겨날 게다.

이번 코로나가 준 가장 큰 선물은 누가 뭐래도 규칙적인 운동일 게다. 아파트 옆 유등천에 나가 1주에 5-6번 정도 걷는다. 여러 꽃과 풀이 무성한 천변을 걷는 건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는 다리 밑에서 약 20-30분 간 운동 한 후 돌아와 샤워하면 개운하다. 1시간 남짓 소요돼 나에겐 꼭 알맞다. 오갈 때 아내와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대화를 주고받는다.

유등천변에는 샛노란 금계국과 달맞이 꽃, 흰 개망초 등이 널려 있어 꽃 천국을 이룬다. 무주구천동 쪽에서 내려오는 유등천은 비교적 맑아 많은 물고기들이 노닌다. 돌다리를 건너면서 이들 물고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40-50cm 넘는 월척부터 조그만 새끼들까지 볼 수 있다. 그 사이로 야생오리들이 다니고, 여러 마리의 흰색 백로와 잿빛 백로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물론 나는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부터 유등천변을 걸었지만 1주에 겨우 2-3 번이었으나 코로나 사태 이후 최소한 5-6번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거의 매일 걷는 셈이다. 모처럼 밖에 나가면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1년 사시사철 달고 다니는 감기에서 조금은 멀어진 듯싶다. 따라서 병원출입도 덜해졌다. 이 모두 코로나 19 덕분이 아닌가 여겨져 고맙다.

음악회는 신년연주회 이후 7개월 넘게 발이 끊겼다. 가을의 외국 유명연주회도 예약을 취소할까한다. 음악은 집에서 FM라디오나 CD, 컴퓨터, 또는 유튜브로 즐기고 있다. 코로나가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은 영화다. 원래 영화광이어서 대학시절엔 1년에 120편정도 감상했지만 최근 몇 십년간은 영화관에서 연 20-30편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1주에 서너 편씩 본다.

주로 왕년에 히트 쳤던 고전영화다. 케이블TV에 내장돼 있는 영화로서 1950-60년대, 1970-80년대 고전이 대부분이다. 1930-40년대와 최근 작품도 가끔 본다. 과거에 내가 봤던 명화나 보지 못했던 작품도 있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집중해서 감상하기도 한다. 한국영화도 가끔 본다. 김기영의 ‘하녀’, 신상옥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유현목의 ‘오발탄’등이다.

고전명화는 워낙 오래 된 영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영화가 적잖다. 어떤 작품은 워낙 생소해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학창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문학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그렇게 낯 설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 젊었을 때의 감흥이 새로 솟아나기도 해 보람을 느낀다. 이번 코로나시즌에 20C 스릴러의 명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을 많이 봤다.

이창, 현기증, 나는 비밀을 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다이얼 M을 돌려라 등 전성기의 작품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역시 히치콕!”이라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그의 작품 중 역시 최고는 ‘사이코’였다. 안소니 퍼킨스와 자넷 리의 명연이 돋보였다. 이에 못지않은 작품이 ‘현기증’으로 신인 킴 노박의 육감적이고 신선한 매력이 만점이었다. ‘북북서로...’도 끝까지 땀을 쥐고 보았다.

50년대 세계 영화계를 휩쓸었던 헐리웃의 육체파 배우 마릴린 몬로(1926-1962)의 전성기시절작품 10편, 60년대 역시 세기적인 글래머로 명성을 떨쳤던 이탈리아 출신 소피아 로렌(1934- )의 출연 작품 8편을 본 것은 수확이다. 50-60년 만에 다시 보니 과거와는 느낌이 다르고 새로운 맛이 났다. 나는 학창시절 이 두 육체파여우보다 데보러 커와 오드리 헵번을 더 좋아했다.

가슴과 히프가 너무 큰데다 몰 지성적이고 연기도 별로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에 보니 글래머로서 연기도 좋은데 왜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변했음인지, 내 여성관이 바뀌었음인지 알 수 없다. 몬로는 안타깝게도 몇 차례의 결혼 실패 후 약물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공연한 ‘왕자와 무희’를 이번에 처음 봤는데 연기와 노래가 모두 괜찮았다.

또 돌아오지 않는 강,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나이아가라,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등을 보았는데 그 중 최고작품은 명장 빌리 와일더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1959)다. 잭 레몬과 토니 커티스의 여장연기와 몬로의 섹시미가 어울려 배꼽을 쥐게 한다. 잘 짜여진 각본과 뛰어난 연출로 몬로의 특기(노래 농염함)를 잘 살려냈다. 나는 ‘뜨거운...’을 몬로 최고작품으로 친다.

그녀 이후 섹스어필을 무기로 한 여배우들이 줄을 잇는다. 그녀의 이름약칭 MM에 이은 BB(브리짓 바르도),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등장했고 이를 전후해 라나 타너, 지나롤로 브리지다, 실바나 망가노, 실비아 크리스탈 등으로 이어졌다. 50년대 초 그녀에 필적할 섹스어필 배우가 등장했으니 바로 소피아 로렌이다. 이번 코로나 시즌에 나는 그의 출연영화를 마음껏 보았다.

전성기인 1960대초-70년대 초 그녀의 이탈리아 출신 남편 제작자 카를로 폰티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내가 본 영화도 대부분 그시대 작품. 먼저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해바라기(1970)이다. 이 영화는 소련이 배경이라는 이유로 수입이 안 돼 10여년 뒤에 지각 개봉했다. 명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공연했는데 헨리 만시니의 배경음악이 애절하다. 고급 멜로영화의 표본.

로렌은 마스트로얀니와 수많은 작품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다. 옴니버스영화인 사랑의 변주곡(원제:어제 오늘 내일), 역시 옴니버스영화인 보카치오 70, 두 여인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그녀의 섹시미는 몬로완 다르다. 몬로보다 키가 10센티 더 크고 눈, 코, 입이 모두 큰 글래머이다. 연기는 기초가 단단하고 따발총 같은 이탈리아 말을 내뱉을 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밖에 이번 코로나 시즌에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코로나블루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앙리 베르누이감독의 25시, 롤랑 조페의 미션,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원스 어픈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마틴 스콜세시의 대부와 셔터 아일랜드 등 70년대 전후한 영화, 그리고 007시리즈 등 왕년의 명화를 즐기며 코로나로 우울해진 내 마음을 달랬다.

어쨌든 코로나가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할까? 나름대로 시간을 활용하며 재미있게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것에 시간을 더 할애하며 뜻있게 보내려 한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코로나가 잠잠해 지면 성당에 나갈 계획이다. 또 좋아하는 여행도 해볼 생각이다. 해외여행이 안 되면 가벼운 국내여행만이라도 해야겠다. 물론 내 뜻만으로는 안 될 일이긴 하지만.

 

 

권오덕(수필가·전 대전일보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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