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한 도시에 사는 딸네 집에 며칠 가 있는 동안 나는 중학교 2학년인 손녀를 보고 조그만 충격을 받았다. 전에 없이 화장을 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 요란스런 화장은 아니었지만, 입술을 붉게 칠한 걸 보고 놀랐다.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저 애가 웬 화장이냐”고 묻자 “요즘은 초등학생도 화장하는데 그걸 모르냐.”고 퉁명스레 답한다. 거리에 나가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대부분 많은 여학생들이 얼굴을 화장하고, 머리도 성인처럼 손질하고 다니는 게 눈에 뜨였다. 그동안 잘 살펴보지 않은 탓에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이후 시내버스를 타보니 아예 거울을 앞에 놓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거나 얼굴 손질하는 여학생들이 꽤 많이 보였다. 도시여학생들이 화장하는 것은 오래 됐고 요즘은 시골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둔한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최근 네덜란드에 사는 한 지인의 중학생 손녀가 한국을 찾아 했다는 얘기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손녀는 해외에서 10년째 살다가 귀국해 또래 아이들의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하더라는 것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이 거의 화장을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쁘게 치장하고 다니는 한국 학생들이 아주 보기 좋았다”며 자신도 화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란다.

필자의 손녀가 결국 화장하게 된 것은 소외감을 이기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화장하는데 자신만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던 듯싶다. 요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화장하는 세상이 되었다. 정도 차는 있지만, 한국여성처럼 화장을 많이 하는 나라도 드물 듯 싶다. 자신의 미를 돋보이게 하는 건 이해하지만 ‘화장하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보니 개운치 않다.

흔히 남쪽 나라사람들은 북쪽보다 더 진하게 화장한다고 한다. 예컨대 그리스나 스페인 사람들이 독일·스웨덴·러시아인보다 화장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온대지방인 한국 사람이 화장을 많이 하고 또 좋은 화장품을 많이 생산하고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 남을 의식하는 특유의 성격 때문이다. 한국 화장품이 세계적으로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화장품선진국인 동시에 성형천국이기도 하다. 워낙 손재주가 뛰어난 민족이어서인지 우리의 성형기술은 세계적이다. 손으로 하는 골프 탁구 당구 등 구기종목이 세계를 제패하는 것과 같이 정교한 손 기술이 필요한 성형수술, 위·대장 등 외과 수술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최근 일본 중국과 구미 각국에서 수술을 위해 한국을 많이 찾고 있어 자랑스럽긴 하다.

요즘은 성형도 남녀노소 없이 흔하게 한다. 취업을 위해, 진학과 결혼을 앞두고, 낮은 코를 서양인처럼 높이고, 쌍꺼풀과 턱, 주름, 가슴과 처녀막재생수술까지 하는 건 오래 됐다. 그리하여 성형외과 의사가 의료계에서 최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필자는 20여 년 전 현직에 있을 때 미인대회 심사위원을 여러 번 했는데 당시만 해도 성형한 흔적이 있으면 감점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에게 잘 보이고 자기의 외모를 위해 화장·성형하는 게 큰 흠이 될 순 없다. 피부를 곱게 가꾸기 위해 화장하고, 또 코를 높이는 등 성형하는데 누가 간섭할 수 있겠는가? 다만 너무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할 것이다. 지나친 화장과 잘못된 성형으로 외모를 망치는 경우도 많은 모양이다. 최근 어떤 여성정치인은 얼굴성형에 억대의 돈을 썼다는 루머 때문에 선거에 패배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최근 남녀노소 구별 없이 화장하고, 외모를 뜯어 고치는 ‘화장하는 대한민국’, ‘성형천국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다. 거리에 나가보면 비슷비슷한 모습의 선남선녀들이 도시를 활개 친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인, 특히 여성들 모습이 비슷해 누가누구인지 구별 못하겠다.”는 소리를 한다. 실제 TV를 보면 가수·아나운서·탤런트들의 엇비슷한 얼굴을 많이 볼 수 있다.

서울은 세계의 9번째 미녀도시라고 한다. 세계제일의 미녀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이고, 불가리아의 바르나가 2위, 스웨덴의 스톡홀름이 3위이다. 뉴욕, 파리 런던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미스유니버스 등 세계미인대회를 휩쓸어온 베네수엘라는 많은 미인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미인을 양성해왔지만 지금 경제파탄으로 수많은 미녀들이 몸을 팔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는 외적인 미도 중요하지만 독서와 함께 지적소양을 쌓아 내적미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C초의 노벨상 수상작가 조지 버나드쇼(아일랜드 1856-1950)의 일화가 떠오른다. 젊었을 때의 버나드쇼에게 예쁜 여배우가 청혼을 했다.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과 결혼하면 선생님처럼 지성적이고 저처럼 뛰어난 미모의 자식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버나드쇼는 재치 있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 “싫습니다, 저처럼 못생기고 댁처럼 머리가 텅 빈 아이를 낳을 겁니다.” 필자는 화장하고 성형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하고 또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가벼운 성형은 오히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거액을 들여 얼굴 자체를 뜯어 고치는 과잉성형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권오덕 전 대전일보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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