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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무사(水鏡無私)

옛 부터 우리 선인(先人)들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한 마음을 거울처럼 잔잔한 물 즉 명경산수(明鏡山水)에 비유하기를 즐겼다. 옛날 중국(中國)이 진(晉)나라의 악 광(樂廣)을 대하고 나서 상서령(尙書令)의 위근(衛瑾)이 그의 사람됨을 평하기를 < 이 사람이야말로 사람의 수경(水鏡)이다. 그를 대하면 광채가 밝게 비치듯 구름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고 극찬하여 마지않았다. 여기서 수경(水鏡)이란 < 물 >과 < 거울 >이란 뜻으로 잔잔한 수면을 거울 같음으로 비유했다. 사람을 수경(水鏡)에 비유할 때는 그의 인격(人格)이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깨끗하여 모든 사람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것을 일컫는다.

또한 수경(水鏡)은 < 물과 거울 > 두 가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물과 거울은 한 결 같이 사물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내비쳐 보인다. 이 두 가지는 사심(私心)이 작용하여 그 그림자를 실상(實相)보다 미화(美化)하거나 깎아 내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심(私心)이 없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한 마음과도 같다고 하겠다.

물은 절대로 공평한 까닭에 수평을 잡아야 할 때 반드시 물로 표준을 삼지 않을 수 없다. 거울 또한 지극히 밝아 한 점 흐린 구석이 없는 까닭으로 못생긴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모습이 못나게 비쳐 보이더라도 그는 결코 거울을 나무라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다. 사심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제 아무리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해도 그 공정성(公正性)에 의심을 품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물과 거울 같은 공정함을 지니기도 어렵거니와 물과 거울과 같이 공정함을 인정받기도 또한 어렵다. 물과 거울은 사(私)가 없다. 수경무사(水鏡無私)라는 말은 위와 같은 이치를 가리 켜 이른 말이다.

조선왕조의 피 비릿 내 나는 비극 중의 하나인 단종(端宗)의 사건은 세조(世祖)집권 이후 오랫동안 그 진실이 금기에 부쳐져 왔다.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붓이 있어도 쓰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사실을 듣고 자란 추강 남효온(秋江南孝溫 : 1454~1492) 선생이 세조 찬탈에 항거하다 순절한 육신(六臣)의 사적이 점차 없어져 가는 것이 안타 까와 그들의 전기(傳記)를 써서 후세에 남기려 하였다. 그의 문생(門生)과 친구들은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이를 극력 말렸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내 한 몸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충신(忠臣)의 자취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고집하고, 마침내 육신 전(六臣傳)을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그 뒤 그는 생전의 행적이 화근이 되어 부관참시(副官斬屍) 즉 사후에 다시 죽임을 당하였다. 그는 역사 앞에 진실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사심 없는 조선의 선비이었다.

또 조선조 중기의 학자 정암조광조(靜岩 趙光祖 : 1482~1519)선생은 사림학파(士林學派)의 영수(領袖)로서 도학사상(道學思想)을 바탕으로 개혁정치(改革政治), 도교정치(道德政治)를 실현(實現)하여 나라의 기강을 튼튼히 하고자 힘쓴 분이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간사한 무리 남곤(南坤), 홍경주(洪景舟)등의 모략에 걸려 나뭇잎에 꿀을 바른 주초 위왕(走肖爲王)등으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자신의 바른 뜻을 크게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수경무사(水鏡無私)한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현대인들까지 그 높은 뜻을 숭상하고 있다.

그가 구례(求禮)고을로 부임하는 친구 안순지(安順之)에게 부치는 시 송안순지부구례(送安順之赴求禮)를 보면 그의 사상적 일면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그대 가는 길 마침 봄이 왔거니 (君行屬春時)

하늘과 땅도 더불어 기쁨에 넘치겠구나. (天地養仁和)

얼음 풀린 강물은 새로 흐르고 (活潑江新流)

언덕 위엔 새싹이 돋아나리라 (峯茸草生坡)

길은 아득히 천리 멀고 먼 데 (道千里遠)

눈에는 지난 세월 스쳐 지나가겠지 (眼中歷幾多)

군자는 마음이 세속의 때를 벗어나서 (君子惟心遠)

어디서나 틀린 생각을 하지 않는 법 (無非意所加)

훗날 그대 선정을 베푼다는 소식들을 때 (佗日聞報政)

오늘 이 노래를 다시 부르세 (須億此日歌)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에서 이처럼 수경(水鏡)과 같이 평정하면서도 공정한 마음을 변함없이 지니고 살아가는 일은 그에 따르는 참기 어려운 시련과 고달픔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값지고 오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마음을 흔들어 놓는 유혹이나 비난의 소리는 언젠가 자취 없이 흘러가 버리는 뜬구름이거나 한 때 몰아닥치는 바람소리와도 같은 것으로 결코 오래고 힘 있는 것일 수는 없다.

모든 면에서 개방된 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보다 넓은 의미의 시민정신을 정립해 가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혈연, 학연, 지연 등 친소관계에 얽혀 있던 지난날의 인습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지난날 수경무사(水鏡無私)의 정신으로 살아간 선인(先人)들의 정신을 한번쯤 음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조종국 원로서예가, 전 대전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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