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설이 지나면 김장하기가 거의 끝나고 서서히 겨울철에 접어든다. 올 초설은 지난 23일, 그러나 첫 눈은 다음 날 서울을 비롯한 강원도와 충청북도 지방을 중심으로 비와 함께 내렸다. 지난 토요일에 다니는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목욕을 다녀왔다. 목욕을 마치고 지하 식당에 점심을 하러 내려갔다가 물리치료사를 만나게 되었다.

치료사는 우리 처지를 잘 아는 터라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장을 해마다 담아주다시피 했기에 ‘올 김장은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었다. 아직 담지 못했다며 사다가 먹는 방법이 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치료사는 친정어머님은 몸이 편찮으시어 병원에 다니시느라 손수 늘 해오시던 김장을 올 해는 하시지 못했다며 ‘우리 친정어머님 김치를 맛있어 하셨는데 우리 시어머님 김치도 친정어머님 김치 맛에 못하지 않다’며 시어머님이 담근 김치라도 가져다 드리고 싶다‘했다.

나오는 데 입구에 앉았던 여 직원이 며칠 전 물리치료사가 맡겨놓은 것이라며 동치미 한 통을 주었다. 동치미 국물은 시원했고 무는 상큼했으며 아삭 아삭 씹히는 동치미 식감이 아주 좋았다.난 토요일 저녁때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사장의 부인이 전화,‘저녁은 드셨느냐?’는. 준비 중이란 말을 들은 부인은 큰 냄비에 조선배추 사골 된장국, 동치미 한 통, 김장 배추 한 통을 손수 가져오셨다. 마침 이번에 담은 동치미라며 동치미 한 통을 가져온 집안 아주머니가 ‘동치미 국물 맛이 들었다’며 원래 동치미 국물과 식감이 좋은 동치미를 좋아하지 않으시냐?‘며 맛이 든 무 한 점을 주어 그 맛과 식감을 즐기던 중이었다.

며칠 전이다 오후에 오는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집에서 따온 잘 익은 월아 감이라며 여러 개를 내놓았다. 얼마 전 익은 감이 막 출하될 때 월아 감이 생각나 전통 5일장에 혹시나 하고 나가 보았으나 ‘요새 월아 감이 어디 있느냐?’ 고 반문만 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일흔에 가까운 요양보호사는 월아 감 말고도 시골 딸 네 집에서 따온 밤 애호박 가지 고구마 등을 가져와 가을 수확기에 제 맛을 좀 보시라며 좀처럼 보기 힘든 예스런 정의 숨은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천규 전 대전MBC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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