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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단동 연결, 철교 하루 2차례 씩 개폐전재홍 사진이야기① 압록강 철교와 신의주
초기에는 단선철로였고 양쪽에 폭 2.6m의 인도가 설치되었다

3년 간 공사 연인원 51만 명 동원

압록강철교는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중국 요령성 단둥시를 연결하는 국제선 철교이다. 1909년 8월에 착공, 1911년 11월에 준공되었다. 교량의 철 구조물은 미국에서 제작되어 인천까지는 해상으로, 신의주까지는 화차로 옮겨졌다. 공사 연인원 51만 명, 175만원의 건설비가 들었는데 중국과 일본이 분담했다.

이에 앞서 1904년 개통된 부산-서울 442km의 경부선과, 1906년 개통된 서울-신의주간 516km의 경의선 철도가 연결되었다. 1908년 4월 1일부터 부산-신의주를 직통하는 급행열차인 융희호를 운행했다. 일제는 1911년 압록강철교를 건설하고 만주철도를 경의선과 같은 표준궤도로 개축해 봉천(奉天 현재:심양), 장춘(長春)까지 연결했다.

1930년대에는 경의선을 통해 베이징까지 직통열차를 운행했다. 또한 서울에서 영국 런던 행 열차표가 판매되었는데 경의선과 만주철도, 시베리아철도를 경유하는 노선이다. 오늘날 남북분단으로 인해 철도가 막혀버렸는데 중국이나 러시아 유럽으로의 육로 접근은 훨씬 쉬운 편이었다.

압록강철교는 당시 돛이나 높은 구조물을 장착한 선박의 항해를 위해 한국 쪽 9번째 교각을 개폐식으로 건설했다. 회전교는 하루에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씩 회전 개폐하였다. 상판이 들리는 방식인 부산 영도다리와는 달리, 90° 회전하여 십자형으로 열리는 우리나라 유일의 회전교였다.

다리의 회전은 수동식이었으며 비상시를 위해 12마력의 석유발동기를 갖추었다. 1934년 11월에 안전을 이유로 회전을 폐지했다.

1943년 5월에는 철교 상류70m 지점에 총연장 943m의 복선의 신 철교를 건설되어 양방향 소통이 원활해졌다. 초기에 건설된 구 철교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된 채로 보존되어 있다.

철교는 오전과 오후에 각 한차례씩 90도로 개방되었다. 철교보다 높은 돛단배가 통과하고 있다.

[전재홍 사진이야기] 연재

[편집자 주] 목요저널은 '전재홍 사진이야기'를 연재한다. 

전재홍 필자

전재홍 필자는 1988년 대전일보에 입사해 1990년 12월 발생한 전주교도소 탈주범 대청호 자살사건을 근거리에서 촬영하며 세계적인 특종을 했다. AP, AFP, 교토통신에서 전기자의 사진을 전 세계로 타전했다. 한국보도사진전 금상, 한국기자상, 서울언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2007년에는 진천 수해 현장을 취재한 ‘중장비타고 집으로’가 한국보도사진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0년부터 일제의 쌀 수탈현장인 논산, 호남평야의 건축물을 기록했다. 현장조사와 연구물로 상명대에서 석사, 한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근대도시연구원 원장이며 근대도시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1932년 낙성식을 가진 신의주부청사. 신청사는 신의주가 개항장이자 신흥 도시로서 인구가 증가, 업무량이 늘면서 신축되었다. 1914년 인구 5,709명이 1920년 13,798명으로 242%가 증가했다.
경의선 종착역으로 1912년 10월 준공된 신의주정차장. 양식 3층 규모로 1층은 역사, 2층과 3층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이용했다.

 

신의주공립심상고등소학교1909년 신의주(新義州)에 설립된 일본인 자녀 공립초등교육기관. 신식 3층 규모로 번듯하게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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