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역에는 '단묘(檀廟·대전시 서구 정림동)'의 사례처럼 소유기관의 관리 부실로 방치되고 있는 비지정문화재가 많다. 비지정문화재는 법령에 의해 지정되지 않았지만 토지, 해저에 묻혀 있어 노출되지 않은 매장문화재와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일반동산문화재, 그 외 향토유적이나 유물 등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말한다. 지정·비지정을 막론하고 모두 지역의 중요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보호·보존에 만전을 기해야 하지만 개발로 인해 사라지거나 관리당국과 후손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 도난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대전일보는 세 차례에 걸쳐 개발과 도난으로 사라지고 있는 비지정문화재의 위기와 보존의 필요성, 앞으로의 과제 등을 짚어본다.



△도시 개발에 밀린 비지정문화재=택지 개발 공사가 한창인 대전 서구 도안동 일대. 이곳에서는 개발에 밀려 소중한 문화유산이 훼손되거나, 문화재 보존 비용에 대한 입주민들의 집단민원이 제기되는 등 문화재 보호에 대한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도안동 가돈리 입구에 위치한 유교 유적 돈파사(豚坡祠)가 헐리고 다시 신축되는 일이 벌어져 지역 문화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돈파사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을 비롯한 충주박씨 문중의 4인과 여흥민씨 문중 민재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우(祠宇)다. 1781년(정조 5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이 전국적으로 내려지면서 헐렸다. 그 후 1966년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매년 음력 3월 23일마다 제향이 올려지고 있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선조를 향한 충효의 정신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19일 대전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당초 돈파사와 그 주변부지를 존치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계획 수립 과정에서 전체 부지 1927㎡ 중 절반 가까이 되는 997㎡만 존치키로 했고, 나머지 부지에 대해서 후손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후손 박 모 씨는 "이미 서까래가 무너지는 등 기존 건물 상태가 좋지 않아 신축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신축되고 있는 건물은 예전 터에서 동쪽으로 조금 옮겨진 채 현대식 한옥으로 지어지고 있어 문화재 본래의 가치가 상실됐다는 지적이다.

지역문화재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방문객들이 건물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평지에 지어져 위용이 떨어졌다"며 "지어진 지 50년도 안 된 비지정문화재라도 계속 원형을 보존하고 잘 가꾸어가면 앞으로의 가치가 더 높아졌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난문화재 과반수가 '비지정'… 데이터베이스 구축 시급=비지정문화재에 대한 현황 파악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보니 도난을 당해도 누가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조차 밝혀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올해 말까지 대전·충남지역에서 도난된 문화재는 37건(1953점)으로 이 가운데 22건(1196점)이 비지정문화재다. 도난된 비지정문화재 중에서도 돌아온 것은 11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오리무중이다.

국보나 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불법거래를 막기 위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기 때문에 도난 문화재 거래 자체가 힘들어졌다. 유명 사찰 등 문화재 밀집 지역엔 CCTV가 설치돼 범죄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감시가 소홀한 종갓집 등 지방 고책의 유서 깊은 물품, 서책류와 외진 곳에 있는 각종 석물 등 비지정문화재를 노린 범죄에는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지역 사학자와 문화재위원들은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등록과 함께 실태조사를 실시해 목록을 작성, 비지정문화재의 불법거래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전에서 가장 최근에 이뤄진 비지정문화재 현황 파악은 2006년도에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시도별 비지정 건조물문화재 조사보고서'다. 그나마도 목조 문화재에 대한 현황만 파악하고 있으며, 석조 문화재에 대한 조사는 1995년도에 한 것이 가장 최근이다. 고문서 등 개인이 소유한 동산문화재는 목록조차 작성돼 있지 않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정문화재는 불법거래의 제한을 받는 반면에 비지정문화재는 장물 판매가 쉽기 때문에 도난 사례가 더 많다"며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현황 파악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일보)

정민아 기자  mina@daejonilbo.com